매일신문

지역 출신 지상파 첫 男 메인 앵커 SBS 신동욱

"앵커는 안정·균형감 필요 최일구 앵커와 스타일 달라"

신 앵커가 8시 뉴스 시작 전에 노타이 차림으로 자연스런 포즈를 취했다.
신 앵커가 8시 뉴스 시작 전에 노타이 차림으로 자연스런 포즈를 취했다.
뉴스 진행을 위해 이날의 원고를 살펴보고 있는 신 앵커.
뉴스 진행을 위해 이날의 원고를 살펴보고 있는 신 앵커.

"이달 18일 8시 뉴스가 마지막 방송입니다. 이젠 4년간 미국 워싱턴 특파원으로 갑니다."

지역 출신의 SBS 8시 뉴스 신동욱(46) 메인 앵커가 5년 6개월 동안 황금시간대의 뉴스를 잘 진행하고, 이달 말 특파원 신분으로 미국에 간다. SBS 창사 다음해인 1992년 입사한 그는 만 19년 만에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활동하게 된다.

신 앵커는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초교부터 고교까지 마친 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단번에 SBS 입사 시험에 합격했다.

3일 SBS 본사에서 신 앵커를 만났다. 그는 깔끔한 외모에 비해 소탈했다. 고향 후배를 맞는 기분으로 기자를 맞았다. 메인 뉴스 앵커 자리에서 같이 사진도 찍고, 갑작스럽게 연락한 기자를 위해 회의 일정도 조정했다. 밥 한 그릇 대접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취재가 끝난 뒤에도 연락을 할 정도로 정을 냈다.

◆5년 주기로 삶의 변화

그는 제대 후 직업 선택의 기로에서 '이 사회에 기여할 직업이 뭘까?' 고민을 했다고 한다. 고민 끝에 선택한 길은 방송 기자. 신 앵커는 19년 동안의 세월을 5년 단위로 나눠서 의미를 부여했다. 입사 후 첫 5년은 기본기를 다지는 시기이자 좌충우돌하며 많이 배웠던 시기, 그 후 5년은 정치부 기자로서의 활약, 다음 5년은 뉴스 추적 등 심층 취재를 하면서 역량을 십분 발휘한 시기, 그리고 SBS 8시 뉴스 메인 앵커로서의 5년여를 잘 마치고 미국 특파원으로 새로운 5년을 맞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는 모르죠. 하지만 지방 출신으로 2005년부터 2011년까지 5년 넘게 8시 뉴스를 진행하면서 한 번도 교체설을 듣지 않았으니, 잘한 게 맞겠죠. 하하하!"

자기 관리가 뛰어난 신 앵커의 일상은 이렇다. 아침 시간은 휴식과 운동 등 자기 관리에 투자한다. 신문,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뉴스를 수합하고 점심 전에 회사에서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 오후 2시 편집회의, 오후 5시 최종 편집회의를 거쳐 오후 6시부터는 본격적인 방송 준비에 들어간다. 뉴스 원고를 최종 마무리하고, 무대(메인 앵커석)에 오를 준비를 한다. 8시 뉴스 진행이 끝난 후 오후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에 퇴근한다.

◆MBC 최일구 앵커와 컬러가 달라

"앵커가 자기 색깔을 너무 강하게 드러내면 뉴스에는 손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앵커는 눈에 보이지 않게 뉴스를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뉴스 앵커로서의 소신을 이렇게 설명했다. 특히 3가지를 강조했다. '안정감'균형감'꾸준함'. 그래서 그런지 그는 튀는 진행을 하지는 않는다.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뉴스 자체의 콘텐츠를 전달하는 데 충실했다. 하지만 그는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MBC 최일구 앵커 스타일에 대해서는 최 앵커만의 개성 있는 스타일이며, 시청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했다. 그는 '너무 안전운행 하지 말고, 최 앵커처럼 개성을 드러내 보라'는 주변의 권유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과속보다는 안전운행을 지금껏 고수하고 있다. 자신만의 뉴스 진행 스타일로 인정받고 싶었으며, 적절한 평가도 받고 있다.

안정성을 추구하지만 튀는 사건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지난해 배추값 파동 때 이명박 대통령이 '배추 대신 양배추 김치를 올리면 된다'고 발언해 파문이 일 때, 신 앵커는 클로징 멘트를 통해 이 말을 가지고 너무 확대 해석하거나 논란을 벌이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으로 네티즌들의 비난이 잇따랐다. 대통령 발언을 옹호했다는 것이 이유다. 신 앵커는 "대통령 발언을 옹호하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었는데 결국은 오해를 불러왔다. 신중하지 못한 발언에 대해 사과를 했다"며 "그 일을 겪고 나서 방송인으로서 발언에 대해 신중 또 신중하게 됐다"고 했다. 후일담은 없냐고 묻자, "아! 이거 얘기해도 되나 모르겠네!(독백). 사실 청와대에도 지인들이 있다 보니 이후 '미안하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는 청와대의 반응을 전해 들었고 밝혔다.

◆대구, 열린 도시로 거듭나길 기대

신 앵커는 대구경북 출신이라는 데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또 고향 사람들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고 했다.

그는 "올해는 대구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리는 만큼 대구가 열린 사고의 국제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대구시민과 경북도민이 단결해 전 세계가 지켜볼 스포츠 축제를 멋지게 치르고 대구가 좀 더 개방적이고 열린 도시로 거듭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무원 집안에서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대구에서 학창시절(대구초교-대구중학교-경북대사대부고)을 보냈다. 지금도 동창들과는 한 번씩 함께 시간을 보내고, 전화를 통해 정을 나눈다. 현장에서 매일 매일 뉴스를 진행하다 보니 자주 고향에 오지 못하지만, 지역에 대한 생각은 늘 한결같다.

신 앵커의 집안을 소개하면 이렇다. 큰형은 사업을 하며, 둘째 형은 공정거래위원회 국장이다. 결혼을 다소 늦게 해 초등학생 아들이 1명 있으며, 아내는 클라리넷티스트였으나 지금은 가사에 전념하는 주부다.

신 앵커는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항상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지역이 유쾌하게 변화하길 바란다"고 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프리랜서 장기훈 zkhaniel@hotmail.com

☆ "제 뒤 이을 대구출신 머스마 앵커 많이 나와야죠"

신동욱 앵커와 편하게 주고받은 질문과 답변이다. 가벼운 대화 속에 진솔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툭 던져본 질문들에 이런 간결한 대답이 돌아왔다.

▶성격 & 취미 & 별명="학창 및 초년병 기자 시절에는 약간 다혈질이었는데 앵커가 되면서 말과 행동에 신중해졌어요. 직업적 사명감 때문이겠죠. 취미는 다소 정적입니다. 골프는 좀 치지만 다른 운동은 별로…. 평소엔 음악과 독서를 즐기는 편입니다. 특별한 별명은 없고요."

▶SBS의 상업성에 대해="SBS는 태생적으로 주식회사며 자본주의에 토대를 둔 수익을 내야 사는 방송사입니다. 하지만 SBS 자체가 상업적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공공의 이익을 생각하며,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질 높은 방송을 시청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혹시 정치활동에 대한 뜻은="사람의 인생은 알 수 없지요. 일단 앞으로 4년 동안 특파원 생활에 충실해야죠. 국회의원 출마는 대해서는'노 코멘트 '."

▶날 지켜주는 힘은="전 개인적으로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삶을 일구고, 제 뜻을 펼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만 키 183cm의 체구에도 봐줄 만한(?) 외모를 주신 부모에게 감사하죠."

▶좌절감에 빠질 때는="항상 책상 위에 '초심(初心)'이란 말을 새겨두죠. 그렇잖아요. 첫 기자 시절의 열정과 결혼할 때의 첫 마음으로 살면 어려움이 닥쳐도 헤쳐나갈 수 있겠죠. 이번에 워싱턴 특파원도 제가 자청한 것입니다."

▶지방의 앵커 지망생을 위해="사투리에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그것은 기능적인 문제이고,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과 실력을 배양해 자신있게 시험에 임하면 최종 합격합니다. 지역 출신 여성 앵커는 다소 있는데 앞으로 제 뒤를 이을 유능한 남자 앵커도 많이 나오겠죠."

권성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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