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성악과 김인혜 교수가 대학 징계위원회로부터 파면 결정을 받았다는 보도는 예술가가 무엇이냐는 데 대해 고심하게 만든다. 그동안 김 교수는 제자 폭행뿐 아니라 공연 티켓 강매, 선물 강요 등 파면할 수밖에 없는 짓을 해왔다는 것이다.
나는 이번 사건에서 살펴야 할 점은 우선 예술가로서 그의 활동이라고 본다. 만일 그가 진정한 예술가라면, 열정적인 예술가들이 흔히 그렇듯이, 자신의 독특한 과민성이 일상에서도 드리워져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줄리어드 음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등과 수많은 협연을 하며 극찬을 받았던 프리마돈나이다. '난파음악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어느 일간지의 조사 결과 국내 성악가 1위로 꼽히기도 했단다.
참 이상하지 않은가? 단죄의 목록을 살피면 선생이란 위치에서 가능할 만한 온갖 파렴치한 일을 저질렀는데, 그렇다면 지금까지 청중의 혼을 울렸던 아름다운 노래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예술가와 그가 낳은 예술이 이토록 다를까? 문학으로 얘기해 보자. 사람들은 종종 "저 작가는 글이 감동적인데 인간은 글러먹었어" 라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난 20년 동안 문단 생활을 했지만 작품보다 인간적인 면모가 떨어지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무명작가들도 작품보다 인간의 면모가 우월하다. 이런 차이는 판단하는 잣대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말하자면 작가의 삶은, 예술이 그래서는 안 되듯이, 선과 악이라는 일상적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작가는 선과 악이라는 편협하고 믿을 수 없는 통념과 대결하는 자이다. 그래서 그의 삶처럼 작품도 선악의 이원적 태도에 갇히지 않음으로 독자는, 그의 청중은 깊은 울림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위대한 예술가들이 보여준 많은 일탈행위를 알고 있다. 신경질적이고 자주 균형감을 잃어버리는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룰렛게임에 돈을 탕진하여 비스바덴에 있는 전당포를 드나들다가, 위대한 소설 '죄와 벌'을 쓰게 되었다. 역사학자로 유명한 E. H. 카는 '도스토예프스키 평전'에서 "작가를 도박장으로 몰고 간 충동은, 합리적 계산이 아니라 강렬하고 비정상적인 흥분, 때로는 작중 인물들에게 전가시키는 도덕적 타락에 빠지고 싶은 그만의 욕망 추구였다"며 도리어 감동에 젖는다. 초현실주의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는 뉴욕 5번가에 있는 백화점에서 '초현실적'인 마네킹을 쇼윈도에 전시하기로 계약하고 제작했으나 백화점 측이 마네킹의 모습을 완곡하게 바꾸어서 전시하자, 성격이 과격한 그는 쇼윈도의 대형 유리를 박살내 버렸다. 기물파손으로 감방에 갇힌 그에게 많은 예술가들이 지지 편지를 보내왔다고, 자신의 자서전에 유쾌하게 기록하고 있다. 물론 성격이 고운 예술가들도 많다. 하지만 이 역시 개성적이라고 여겨질 만큼 온화함의 극점을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김인혜 교수가 자행했다는 제자 폭행의 실례들은 상당히 납득된다. 제자의 목소리가 울림을 갖지 못했을 때, 공연장에서조차 내면(內面)이 열리지 않는 제자들을 대할 때, 그는 자신한테 혼신의 예술을 명령하듯이 제자들에게도 동일한 요구를 했을 게 뻔하다. 통념(通念)의 벽을 깨트려야 살아나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며, 그 본질을 향한 뜨거운 갈망은 자주 자신과 제자를 구분하지 못했을 테다. 물론 모든 행동이 납득되는 건 아니다. 시부모 팔순잔치 동원이라든가 명품 선물 강요 같은 건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잘못마저 예술가로서 토해냈을 열정의 질량에 비하면 어쩐지 가벼워보인다.
서울대는 징계위원회의 회의 상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나는 그것보다 몇 명의 예술가가 징계위원회에 참여했는지 정말 궁금하다. 예술에 무지한 분들이지 않을까 추측하는 이유는, 단죄의 칼날이 너무 매끄럽고 단칼이었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10여 년 전 김인혜 교수를 영입했다. 뛰어난 프리마돈나임을 인정하고 영입한 게 사실이라면 그냥 내버려두라. 살바도르 달리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내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에 비하면 유럽 전쟁은 유치한 싸움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달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내버려두어도 아마 김 교수는 예술과 인간을 두고 고통스럽게 투쟁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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