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영재의 행복칼럼] 칭다오(靑道)의 새벽

만약에 당신이 산더미처럼 쌓인 업무에 짓눌려 죽어가고 있거나 혹은 빚쟁이가 휘두른 칼에 찔려 죽게 되었거나 혹은 사랑하는 연인에게 바람을 맞아 이세상을 뜨고 싶을 때가 있다면 죽기 전에 잠깐 중국 칭다오에 한 번 가보기를 권한다. 여기를 갔다 와서도 죽을 수밖에 없다면 그때 당신은 죽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일단 칭다오에 갔다면 호텔 하이티엔(海天) 쪽으로 달려가야 된다. 좀 비싸기는 해도 이 호텔에 묵으면 가장 좋고, 안 되면 아무 데나 잠을 자고 새벽에 이 호텔 쪽으로 가면된다.

호텔 바로 옆에 있는 동해서로를 건너면 바로 동해(우리의 서해)가 나온다. 눈을 비비면서 이 해안도로를 걷는 것이 바로 불행의 치료 방법이다. 바닷길을 따라 왼편으로 슬슬 걸어가면 우리나라 해수욕장에서 볼 수 있는 검정 고무튜브 두 개에 나무판자를 걸쳐 그곳에 앉아 낚시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처음 보면 옛날 우리나라 재래식 변소에 앉아 용변을 보는 모습과 흡사해서 웃음이 나온다. 이 사람들은 나중에 해안으로 나와 잡은 물고기를 늘어놓고 앉아 있는데 표정이 심드렁해서 낚시꾼이 집에 가기 전에 잠깐 쉬고 있는 건지 아니면 어부가 잡은 고기를 팔려고 그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하여간 여유만만이다. 고기가 팔려도 안 팔려도 나와는 아무 상관없다는 태도들이다.

계속 걷다 보면 둑에 서서 낚시질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무슨 볼 것이라도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그 뒤에 서서 보고 있었다. 뭔가 싶어 나도 한참 그렇게 서 있어 보았지만 특별한 무엇은 없었다. 이 사람들은 딱히 볼 것이 없어도 그렇게들 무료한 줄 모르고 서 있었다. 아마 그들은 낚시질을 바라보는 것을 새벽 운동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같았다.

낚시꾼들의 바로 앞바다에는 매일 60, 70대 남자 노인 10여 명이 모여 발헤엄을 치고 있다. 이 사람들은 대게 두세 무리로 모여 헤엄을 치는데 내가 한 시간쯤 산책하고 돌아와도 그때까지 웃고 이야기하며 바다에 떠 있다. 어떤 이는 걸어오고 어떤 이는 자전거를 타고 와서 길에서 겉옷을 벗고 팬티 차림으로 바다로 걸어 들어가 그들의 아침 모임을 시작했다. 남들이야 보건 말건 신경 쓰지 않는다. 아주 자연스럽게 옷을 벗고 바다로 들어간다. 그 누구도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눈 흘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물이 조금 멀어지면 음악 공원이다. 공원 이름에 걸맞게 칭다오 시민을 매일 새벽 여기에 모여 지도자의 지휘를 받으며 합창 연습을 한다. 이 공원은 넓으므로 온갖 패거리들이 다 모인다. 연을 날리는 사람들, 둥글게 모여 제기차기하는 사람들, 우리나라 사물놀이 같은 중국 민속 악기들을 가져와 흥겹게 두드리고 부는 사람들도 있다. 신기한 것은 이런 무리들은 멀리 가지도 않고 합창 연습하는 바로 곁에서 같이 논다는 것이다. 이런 탓에 합창단 속으로 제기가 날아 들어오기도 하였다. 꽹과리 소리가 시끄러웠다. 하지만 노래 부르는 사람들은 제기가 날아오든 꽹과리가 시끄럽든 전혀 관계없이 그들의 노래만 부르고 있었다.

칭다오 해변에는 사람들이 만나도 인사를 하지 않는다. 공자의 고향사람답지 않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지나고 보니 이런 풍습이 매우 편리하였다. 서로 바람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간다. 나는 내 할 일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남들이야 무얼 하든 나와는 관계없다. 설혹 그것이 나를 방해해도 나는 그걸 느끼지 못한다. 업무가 아무리 날 짓눌러도, 빚쟁이가 쌍칼을 휘둘러도, 연인이 배신을 해도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나에게 비극은 없는 것이다. 다만 행복만 내 앞에 놓여 있을 따름이다. 칭다오의 새벽 바다는 이래서 좋다.

권영재 대구의료원 신경정신과 과장·서구정신보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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