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대통령의 기도와 무릎 꿇기

대통령 정도의 정치 지도자에게 성경(聖經)이나 기도 같은 신앙적 요소는 얼마만큼 통치 철학에 영향을 끼칠까. 어릴 때부터 성경이나 불경을 읽으며 자랐거나 절이나 교회에 꼬박꼬박 나가는 것만으로 훗날 그의 정치 세계에서도 신(神)의 가르침이나 교리(敎理)의 깨침에 맞는 통치가 보장될 것인가. 몇몇 인물들을 돌아보면 꼭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구소련의 스탈린은 성경을 다 독파했다고 볼 수 있는 유일한 독재자로 평가된다. 물론 신학교 시절에 읽은 것이긴 하지만…. 그러나 훗날 그는 종교보다는 공산주의 유물사관에 더 우선 가치를 두었다. 어릴 적 신앙 생활이 권력을 잡은 뒤에는 무의미해진 경우다.

히틀러 역시도 태어날 때부터 로마 가톨릭 신자였고 또 그렇게 자라났다. 그러나 1차대전 핏물 고인 참호 속에서 신의 존재를 의심하고 정치에 물들기 시작하면서 그 어떤 종교 모임에도 나가지 않고 정권을 쥔 뒤엔 가톨릭, 개신교, 유태교를 가리지 않고 핍박했다.

반대의 경우를 보자. 링컨은 대통령 시절 교회의 3일 기도회에는 꼭꼭 참석했다. 신변 경호를 위해 교회 강당 옆에다 작은 방을 마련해 문틈을 빠끔히 열어놓고 목사의 설교를 듣는 불편한 예배를 보긴 했지만 신앙 생활에는 충실했었다. 그의 노예 해방도 사랑과 화해라는 기독교적 신앙 정신의 발로라 볼 수 있지만 신앙과 통치 철학이 누구에게나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기도 속에 자랐다는 우리의 이명박 대통령은 어느 쪽으로 평가할 것인가.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무릎을 꿇은 모습이 보도되면서 '대통령의 무릎은 곧 대한민국의 무릎이다'는 논란에다 장로의 무릎 꿇기와 국가 권위의 무릎 꿇기는 다른 차원이란 시비가 뜨겁다.

이 대통령의 무릎 꿇기를 링컨의 문틈 예배 같은 순수한 신앙심으로 받아줘야 할 것인지 아니면 국가지도자에게는 신앙 따로 현실 따로라야 맞는 것인지 따져보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신앙 세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은 그의 회고록 '신화는 없다'에서 어릴 적 어머니의 새벽기도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어머니의 새벽기도는 일에 시달려 고단한 나에게 무척 귀찮은 행사였다. 쭈그리고 앉아 반쯤은 졸다가 기도에 내 이름이 나오면 잠깐 정신을 차리곤 했다…. 어머니는 새벽 4시면 형제들을 전부 깨워 놓고 사회와 일가 친척, 그 다음 아픈 집, 실패한 집 등 이웃집 사람 기도를 한 뒤 맨 마지막에 큰형부터 차례로 기도를 해주셨다. 나에 대한 기도가 가장 짧았던 것은 내가 막내 형제라 집안에서의 나의 위치를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다 몰래 가출(家出) 준비를 하고 자던 어느 날 밤, 이불 속에서 어머니가 나를 위한 '긴' 기도를 하고 계신 걸 듣고 놀랍고 고마운 마음에 가출을 미뤘다"며 '나의 스승은 가난과 어머니의 기도'라고 회고했다.

이번 조찬기도회 무릎 꿇기를 어릴 적 어머니의 기도 기억만을 놓고 본다면 몸에 밴 신앙적 '단순 동작'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론을 말하는 쪽은 사생활 속 신앙 행위로서의 무릎 꿇기라면 모르되 명칭과 성격상 '국가를 위한' 조찬기도회에서는 기독교인으로서보다 국가 최고지도자로서의 기준으로 판단돼야 하고, 대통령이 특정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무릎 꿇는 것은 부적절했다고 반박한다. 그러잖아도 신공항, 과학벨트, 호텔 스파이 사건 논란 등 사사건건 반론과 반론이 부딪치는 까칠한 세태에, 기도회 무릎 시비까지 시끌벅적하게 만든 건 분명 적합한 행동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대범하게 본다면야 이번 대통령 무릎 꿇기 논란은 신앙에 대한 인식 차이와 보는 사람이 느끼는 감성에 따라 제각각일 수 있는 모호한 사안이라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기도조차도 곧장 시빗거리에 오를 만큼 민감한 세상임을 안다면 자신의 신앙적 추억과 관계없이 무릎 하나 꿇는 것까지도 앞뒤를 재가며 진중해야 한다는 논란에 귀기울일 필요는 있다. 또한 이 기회에 일부 종교계도 이런저런 정치적 사안의 중심에 섞여 들어와 세상 논란의 축이 되는 현상이 꼭 바람직할 것인가를 성찰해 봐야 한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계층 영역 간의 경계가 무너져 상호 간섭이 도를 넘고 숲을 보기보다는 잔가지 시비에 빠져 아웅대는 경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다 같이 무릎 꿇고 자성해 봐야 할 국민 화합의 숙제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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