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옛길기행] (11) 청송~영천 잇는 노귀재

고향 떠나고, 돌아올 때 울며 넘던 그 고개

청송은 학이 푸른 소나무에 깃들여 있는 모습이 절로 연상되는 곳이다.

옛날에는 인적이 끊긴 산길을 수백 리 걸어 하늘과 맞닿은 고개를 넘고 깊은 계곡을 따라 하염없이 걸어야만 이르던 곳이 청송(靑松)이다.

비싼 다리품을 팔아 당도하면 수많은 비경과 순후한 인심에 젖어 '올 때 (힘들어) 울고, 떠날 때 (가기 싫어) 울던' 곳이다.

청송 사람들은 '동쪽에 있는 불로장생의 신선세계'란 뜻에서 청송이란 지명이 유래했다고 믿는다. 그만큼 숲이 짙고 골이 깊고 물이 맑다.

대구와 영천, 청송을 잇는 35번 국도의 중심축인 노귀(奴歸)재(해발 502m)는 고갯길이다.

이 고갯길은 청송인들이 모두 이 재를 넘어서 울면서 타향으로 가지만 늙어서 돌아올 때 노귀재 정상에 올라 뒤돌아보면서 울었던 곳이다. 마치 골목에 마중 나온 아내를 만나는 느낌이 든다.

옛 추억이 깃든 노귀재가 곧 추억 속에 묻힐 것으로 보인다.

동절기 결빙'강설에 따른 교통 불편 해소와 청송지역 관광개발 촉진을 위해 지난 2002년 착공한 터널 공사가 오는 2011년 12월 말쯤 끝나기 때문.

터널이 뚫리면 고갯길을 이용하는 사람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

대구와 영천, 청송을 잇는 국도 35호선 노귀재 터널 공사는 청송군의 오랜 숙원 사업이지만 9년간의 장기사업(2002~2011년)으로 현재 공정률 75%를 보이고 있다.

경북의 '교통오지' 청송지역의 막힌 도로 숨통이 올해 연말쯤 뚫린다.

경북도에 따르면 청송지역 교통망 확보 차원에서 동서 6축 고속도로 상주~안동~청송~영덕(116.2㎞) 구간 공사도 올해 착공, 2015년 완공된다.

이와 함께 노귀재 터널이 포함된 청송~영천 구간 국도 35호선 4차로 확장(62.9㎞)과 포항 기계~청송 현서~안동 길안 구간 국도 4차로 확장(32.3㎞) 사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한동수 청송군수는 "청송의 자랑인 국립공원 주왕산 일대의 관광개발 사업 추진과 사과'고추 등 지역 특산물의 원활한 수송을 위해 도로망 구축이 시급했다"면서 "올해 도로 건설과 관련한 국비 확보 과정에서 청송 지역의 도로 건설에 우선순위를 두었다"고 말했다.

속칭 노구재라고도 불리는 노귀재는 청송군 현서면 사촌리와 영천시 화북면 상송리를 잇는다.

◆3선 국회의원의 맨발 행군

애환이 서린 노귀재에 터널이 뚫리는 것을 아쉬운 눈길로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청송지역의 열악한 교통 여건을 타파한 유명한 일화도 있다.

서슬 퍼런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에 청송지역 현역 국회의원이 지역의 도로 포장을 요구하며 '맨발의 행군'으로 시위를 한 것이다.

그래서 청송인들은 지역 도로 확장'포장 공사의 일등공신으로 황병우(80'청송군 부남면) 씨를 꼽는다.

당시 청송'영덕'울진지역구에서 야당으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황 씨는 1985년 당시 영천에서 청송을 잇는 52㎞ 구간이 비포장 자갈길이던 노귀재 정상에서부터 청송읍으로 들어오는 길의 확장'포장 공사를 이끌어내기 위해 '맨발의 행군'을 결행했었다.

당시를 회상하는 황 씨는 "건설부장관을 찾아가 수십 차례에 걸쳐 도로 확장'포장 공사를 건의했지만 그때마다 10년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맨발로 노귀재를 걷는 방법을 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황 씨는 "당시 청송읍에서 현서면 사촌리 노귀재로 이어지는 도로는 군내 8개 읍'면 주민들에게 생명선과 같은 길이었다"고 했다.

황 씨의 '맨발 행군'은 1985년 6월 26일 오전 6시쯤 영천과 청송을 잇는 노귀재 정상에서 시작됐다.

당시 현역 국회의원인 황 씨가 맨발로 자갈길 도로를 걷기 시작하자 지역주민 200여 명이 뒤를 따랐고, 1시간 30분 만에 주민들은 1천500여 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맨발 행군은 순조롭지 않았다. 출발 후 2시간 만에 8㎞를 걸어 청송군 현서면 사촌마을에 도착하자 경찰 병력 120여 명이 가로막았다.

그는 결국 경북경찰청장의 검정 지프에 강제로 태워졌고, 5일간 비포장 자갈길 52㎞를 행진하려던 계획은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국회의원과 군민들의 이날 행군은 노귀재 도로 확장'포장 공사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당시 6만여 군민들이 결집, 지역 푸대접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자 당시 건설부 도로국장이 직접 청송으로 내려와 도로 확장'포장 공사를 약속한 것이다.

결국 행군 이듬해인 1986년 청송군 현서면 사촌리 노귀재에서 청송읍까지 도로 확장'포장공사가 시작됐고, 1990년에는 52㎞ 구간이 말끔히 포장됐다.

◆노귀재 휴게소

청송의 관문 노귀재 정상에는 1990년쯤 청송군이 직접 건립한 노귀재 휴게소가 있다.

이곳은 청송지역 특산물인 청송사과'고추, 대추, 표고버섯, 산채, 주왕산 벌꿀 등을 청송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노귀재 휴게소는 1998년쯤 현서농협이 청송군으로부터 인수해 운영해 오다가 3년 전쯤 개인에게 판매했다.

개인이 운영하면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최상의 서비스와 고품질의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간단히 쉴 수 있는 공간도 있어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호연지기를 맛볼 수 있다. 객지로 떠났다가 돌아올 때 만나는 휴게소의 모습은 정말 반갑다. 마치 골목에 마중 나온 아내를 만나는 느낌이 든다.

◆노귀재에 얽힌 전설

노귀재는 약탈을 일삼던 왜구를 멸시하는 뜻에서의 '종 노(奴)'자와 '돌아갈 귀(歸)'자를 썼다.

노귀재는 오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재앙을 면하는 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노귀재는 청송군과 영천시를 갈라 놓은 재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왜군의 적장은 출정 직전 무속인이었던 모친에게 "조선에 가면 소나무 아래에는 절대 가지 마라"는 당부의 말을 듣는다.

파죽지세로 진군을 거듭한 왜군의 적장이 영천을 정복하고 청송으로 향하고 있었다.

왜군의 적장은 현재 영천시 화북면 하송리를 지나면서 꺼림칙한 생각이 들었다.

소나무 아래라는 마을 이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진군을 계속해 영천시 화북면 상송리에 도착한 왜구들은 마을 이름이 상송이라는 말을 듣고 그때서야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당부한 말이 불현듯 생각났기 때문이다. 영천시 화북면 상송리 아차마을은 여기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조선 정벌의 야심을 가진 왜군의 적장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노귀재를 넘어 청송으로 들어왔다.

청송은 그야말로 소나무 천지였다.

어머니의 당부가 현실로 나타나자 적장은 화를 입을 것이 두려워 더 이상 진군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왜군이 돌아갔다 해 붙여진 이름이 왜귀(倭歸)들인데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에 지금도 있다.

노귀재 역시 왜군이 노비처럼 도망갔다 해 노귀재로 불리고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일부에서는 노귀재는 눈물의 고개이자, 기쁨의 고개로 불린다.

청송인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날 때 서운해서 흘렸던 눈물의 고개요, 나라를 빛내고 여생을 보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기뻐 웃었던 기쁨의 고개다.

그래서 늙어 고향으로 돌아오면 반갑게 맞이해준다는 의미의 노귀재로 불리기도 한다.

◆노귀재 역사 속으로

청송인들은 대구로 갈 때 노귀재를 지난다.

비포장 도로를 다닐 때는 7시간 이상이 걸렸다. 하지만 도로가 말끔히 포장되면서 2시간 10분 만에 대구에 도착할 수 있다.

청송인들의 애환이 듬뿍 담긴 노귀재가 터널 공사로 역사 속에 묻힌다.

하루 6천여 대의 차량이 오가는 청송~영천 구간 국도35호선의 노귀재 터널이 오는 12월 말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노귀재터널이 뚫리면 승용차 주행시간은 25분 정도 단축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청송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의 불편함이 많이 해소될 것이며, 청송지역에서 생산되는 청정 농'특산물 수송에도 많은 도움을 줘 부가가치가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청송'김경돈기자 kd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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