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알바트로스'라는 새

알바트로스(Albatros)라는 새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이 그리고 멀리 나는 새다. 평상시에는 1m가 채 안 되지만 양쪽 날개를 펴면 무려 3.7m에 이른다. 알바트로스가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나는 모습은 장관이다. 무게가 7㎏이나 되지만 알바트로스의 날갯짓은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알바트로스에게 '신천옹'(信天翁)이라는 신선의 이름을 붙일 정도로 신성시한다.

알바트로스의 날갯짓이 아름다운 것은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목숨을 걸고 비행법을 익혔기 때문일 것이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 알바트로스는 곧바로 바닷물에 뛰어든다. 바다에서는 표범상어가 기다리고 있다. 날아오르지 못하면 표범상어의 먹잇감으로 허무하게 사라지게 된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지만 먹히지 않으려고 퍼덕이다가 날아오르게 된 몇 마리의 알바트로스만이 아름다운 비행을 누릴 권리를 갖는다.

날아오르지 못한 알바트로스는 지상에서는 우스꽝스러운 새로 전락하게 된다. 도움닫기를 하지 않으면 날아오를 수 없는데다 바람을 타지 않으면 비행할 수도 없다. 어부들이 항해 중에 알바트로스를 발견하면 곧 태풍이 올 것이라고 예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알바트로스는 어부들에게 쉽게 잡혀 목숨을 잃는다.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가 자신을 지상에 추락한 알바트로스로 비유한 것도 이 같은 알바트로스의 운명 때문이다. 알바트로스는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168석의 거대 의석을 가진 한나라당도 알바트로스의 운명을 닮았다.

3월 말 입지 평가 발표를 앞두고 있는 '동남권 신공항' 사업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등의 국책 사업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제시한 공약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명박 대통령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운 한나라당의 대선 공약이었다는 것이다. 동남권 신공항을 둘러싸고 대구경북과 부산 지역 정치권이 죽기살기식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도 한나라당은 팔짱만 낀 채 그저 남의 일인 양 바라보기만 했다. 내년 총선과 대선 등에서의 후유증이 우려되는 상황으로 악화되자 한나라당 지도부는 호들갑스럽게 제3의 대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날아오를 생각을 하기보다는 날아오르지 않고 땅 위에서 우스꽝스럽게나마 살아남겠다는 것이 한나라당과 여권이 구상하고 있는 신공항 해법인 것 같다. 이는 시기를 놓쳐 도움닫기를 하지도 못하고 민심의 역풍에 휩쓸려 날갯짓 한 번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사람들에게 잡힌 알바트로스의 초라한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한나라당의 운명은 조만간 벌어질 재보선과 총선, 대선 과정을 거쳐 서서히 사라지는 수순을 따르고 있다.

집권 3년에 대한 평가가 될 것이 뻔한 4'27재보선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한나라당의 공천 과정도 민심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나경원 최고위원이 주도하고 있는 특위가 상향식 공천을 주내용으로 하는 공천 개혁 방안을 마련했지만 청와대는 정운찬 전 총리와 김태호 전 경남지사 등 각종 구설수와 비리의혹으로 낙마한 사람들을 전략 공천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천심사위원회가 구성돼 있지만 청와대의 의중이 누구에게 있다는 등의 소문만 무성하다.

선거 결과에 대해 한나라당이 아니라 청와대가 책임져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나라당 지도부에게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한나라당은 민심의 수렁에 빠져 있는 상태다. 비행술을 익혀 헤쳐나오겠다는 의지도, 그럴 만한 수단도 없다. 현재의 상태를 직시하지도 못한다. 익사하거나 표범상어에게 잡아먹히게 될 절체절명의 처지에 놓여있는데도 잠시 후에 전개될 상황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결과는 뻔하다. 국민들은 지금 보여주고 있는 집권당의 방자한 행태에 대해 단호하게 심판할 것이다. 국책 사업 약속 하나 제대로 지키지 않고, 아예 지킬 의지가 없는 정당에는 표를 주지 않으면 된다.

서명수(서울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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