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백도항의 '니에미 씨'란 생선

그물에 걸린 돈 안되는 작은 가자미 "그냥 가져 가세요"

나의 발걸음은 옛 선비들의 발뒤꿈치에도 이르지 못함을 절감한다. 젊은 시절부터 나름대로 산수 간을 돌아다니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아장걸음에 불과했다.

이름난 산과 계곡 그리고 물가의 정자를 찾아가 보면 한발 앞서 다녀간 어른들의 족적이 멋들어진 현판 글씨로 공중누각에 걸려 있다.

지금 세상이야 비행기와 KTX, 그리고 승용차로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으로 단축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당일에 도착하지 못하는 곳이 없다. 옛날에는 경상도 젊은이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에 가려면 짚신 꾸러미를 짊어지고 일주일은 걸어야 했다. 또 문인묵객들이 금강산 묘향산 구월산 그리고 두류산을 유람하려면 오가는 데 보름, 시 짓고 그림 그리는 데 통상 보름은 소요됐다. 그런데도 수많은 선비들이 먼 길 마다 않고 명산대천을 찾아 멋진 시와 산문 그리고 그림들을 남겼다. 요즘은 그런 선비들이 드물다.

퇴계 이황과 같은 대학자들로부터 촉망을 받았으나 29세에 요절한 홍인우의 '금강산유록'을 보면, "지세에는 높고 낮음의 차이가 있고 경치에는 크고 작음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높은 것은 낮음의 누적이고 큰 것은 작음의 극치다."고 읊었다. 젊은 눈이 찾아낸 날카로움은 역시 신선하다.

나는 금강산을 세 번 다녀왔다. 12시간을 걷는 백두산 서파코스도 종주했다. 특히 외금강에서는 봄꽃과 가을단풍을 보았고 내금강에서는 정비석의 '산정무한'에 나오는 장안사 터와 보덕암과 묘길상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금강산의 웅대하면서도 섬세함에 놀라 감탄하면서도 다녀와서는 단 한 줄의 글을 쓰지 못했다. 금강산은 속인이 글로 쓸 산은 아니었다.

여행 도반 몇과 설악산 발치에서 며칠 놀기로 하고 속초로 올라갔다. 마침 고성군 토성면 7번 국도변 청간정 옆에 있는 군인호텔을 겨우 예약할 수 있었다. 호텔의 방값은 실비인데다 PX의 4홉들이 맥주 한 병에 1천원, 양주는 1만2천원, 사우나는 2천원이었다. 여행경비 줄이기 대가들인 우리에겐 정말 맘에 쏙 드는 숙소였다.

청간정은 설악산에서 내려오는 청간천 변의 파도가 넘실대는 바닷가 언덕에 세워져 있는 빼어난 경관의 정자다. 이곳 또한 옛 선비들의 발걸음이 잦았던 곳이다. 우암 송시열이 청간정 현판 글씨를 썼으며 이승만, 최규하 전 대통령이 편액에 글씨를 남긴 곳이다. 옛날에는 교통이 불편했음에도 선비들은 산 좋고 물 맑은 곳을 찾아가 시를 지었지만 요즘은 이런 정자에서 음풍농월하는 풍류객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머무는 3일 동안 돈을 절약하기 위해 자가 취사를 하기로 했다. 아침 7시에 인근 백도항으로 올라가 싱싱한 해산물을 구해 회를 치거나 탕을 끓이기로 했다. 백도항 어선들은 늦은 오후에 바다로 나가 밤새도록 작업하고 새벽에 돌아와 이곳 경매장을 통해 잡은 고기를 몽땅 넘긴다.

잡은 물량이 적어 경매에 나가지 못하고 세숫대야에 담긴 가자미들이 우리 차지가 되었다. 값이 얼마나 싼지 매일 횡재하는 기분으로 백도항을 드나들었다. 하루는 통통배 부부가 그물에 걸린 작은 가자미를 "니에미 씨" 라는 욕을 퍼부으며 길가로 내던지고 있었다. 알고 보니 밤새도록 조업했으나 돈 되는 생선은 한 마리도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길가에 버려진 가자미를 주워 "얼마 드릴까요" 하고 물어보았다. "그깐 것, 그냥 가져가세요" 한다. 숙소로 돌아와 칼로 목을 따 피를 빼고 냉장고에 넣어두고 수시로 꺼내 회를 뜨니 숙성된 가자미 맛은 기가 막혔다. 그런데 함께 담겨온 이면수란 생선은 가자미보다 기름기가 더 많아 그런지 냉장고 안에서 변한 것 같았다. 그것도 모르고 그놈들까지 회를 쳐 먹었더니 그게 식중독의 원인이 될 줄이야.

요즘 보수와 진보 정치인들의 무상급식 논란 속에 "공짜 치즈는 쥐덫 위에만 있다"는 러시아 속담이 대유행이다. 둑 밑에 쪼그리고 앉아 설사를 하면서 공짜 치즈 먹은 것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나도 욕 한마디 했다. "니에미 씨."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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