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설날 노크소리

"똑똑똑, 똑."

설 하루 전 반복해서 울리는 노크소리. 똑똑똑, 똑, 똑똑똑, 똑…. 나는 베토벤이 되어 운명의 노크소리를 듣는다. 아! 나에게 세상과 로그오프할 수 있는 나만의 동굴을 달라!

아시다시피 이번 겨울은 엄청 추웠다. 청도 작업실 보일러가 터졌다. 청도에서 가장 가까운 파동에 숙소를 찾았다. 방이 없다. 전세대란. 겨우 하나 찾았다. 1980년 언저리에 지었으니 30년 가까이 되었나 보다. H아파트, 초인종도 엘리베이터도 없다. 어쨌거나 드디어 나도 출퇴근이란 걸 해보게 되었다. 그런데 청도까지 왔다 갔다 하니 기름값이 억울하다. 그리고 너무 춥다. 해서, 며칠씩 파동에 칩거하는 일이 잦아졌다. 나는 작가다. 뒤집으면 백수다. 백수 아닌 작가임을 항변하기 위해 파동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작두로 자르고, 드릴로 뚫고, 망치로 두드리기까지 해야 한다. 아파트 2층에서 할 작업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백수 아님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아! 고단하다. 세상에 속할 수 없는 직업이 작업이다. 처음엔 조심조심 하던 작업이 어느새 대범해져서 신나게 두드리고 잘라댔다.

명절을 거꾸로 쓰면 절명이다. 절명은 목숨(命)이 끊어진다는 뜻도 되지만, 나는 이름(名)이 끊어지는 때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이름이 끊어지고 패밀리 네임으로 뭉치는 날. 그게 나는 명절이라 정의한다. 당연히 여러 부작용과 마찰들이 이날 일어난다.(보이건 보이지 않건 간에) 그래서 이번 설은 혼자 파동에서 열심히 작업하며 보내려 했다. 평생 처음 있는 일이었고, 많이 우울했다. 우울할 때는 두드리는 게 최고다. 그리고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다. 똑똑똑 똑. 나는 죽은 척했다. 노크소리가 두세 번 울리더니, 조용해졌다. 휴-.

나는 쓸쓸하고 경건하게 TV를 보며 숨죽여 설을 보냈다.(이제 작업 못 하겠구나) 다음날, 한층 커진 노크소리가 다시 시작됐다. "똑똑똑, 똑. 똑똑똑, 똑. 쿵쿵쿵쿵(발로 차는 것 같다), 철컥철컥(손잡이 돌리는 소리)."

오 마이 갓,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하얀 얼굴로 문을 열었다. 키가 자그마한 어르신,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물이 새서 천장이 내려앉았단다.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 알고 보니 내가 이사 오기 일 년 전 이 집 주인을 만날 수 없어 해결 못 한 누수사건. 합판 한 장 내려앉은 단발성 누수에 파이프라인 공사까지 끝난 현재완료형사건. 서로 얼굴도 못 본 집주인과 아래층 어르신 전화로 싸운다. 합판 한 장 갈면 될 일을 일 년 동안 서로 못 만나 오해가 오기로 바뀐 것 같다. 아래층 어르신 까칠한 스크루지 영감님 같다. 하긴,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서처럼 나도 홀몸노인 신세이긴 마찬가지다. 내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슬쩍 여쭤보니 작업하는 소리는 전혀 못 들으셨단다. 다행이다. 내 작업과, 패밀리, 그리고 더불어 사는 일에 대한 복잡한 생각이 안도감과 함께 피로처럼 몰려왔다.

리우 미디어설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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