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상 최악의 상황이라며 좌절할 때 용케도 기회를 찾아내는 이들이 있다. 물론 운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부동산업계에서 '국내 최초' 기록을 잇따라 만들면서 성공 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이병철(43) 하나금융그룹 부동산그룹장도 그 중 하나다.
14년 전 외환위기 때였다. 부동산 시장이 해외 투자기관에 개방됐다. 유창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대형 외국 유통기업의 국내 진출을 대행하던 그는 자연스레 부동산에 눈을 떴다. 부동산을 동산(動産)화하는 안목을 갖췄던 게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부동산은 소유할 때가 아니라 활용할 때 진정한 자산가치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그런 인식이 별로 없었죠. 남들이 관심을 갖지 않던 틈새시장을 발견한 뒤 개척해온 셈입니다."
2001년 설립한 국내 1호 자산관리회사 'JW에셋'이 건설교통부에서 제1호 리츠(REITs) 인가를 받으면서 그는 '국내 부동산 자산관리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이어서 2004년에는 개인회사로는 첫 부동산신탁회사인 '다올신탁'으로 업종을 바꿨다. 부동산 신탁사란 부동산은 있지만 경험과 자금이 없어 관리나 활용에 어려움을 겪는 소유자(고객)가 맡긴 신탁재산(부동산)을 효과적으로 개발'관리해 그 이익을 돌려주는 업체를 말한다. 지난 1991년 신탁법과 신탁업법을 기반으로 최초의 신탁사가 설립됐으며 한국토지신탁'대한부동산신탁 등 기존 회사들은 모두 공기업 자회사였다.
"기존 회사들과는 서비스를 차별화했습니다. 수익성 높은 상품을 개발하고 찾아가는 서비스를 하다 보니 선호도가 저절로 높아졌습니다. 경영의 최우선 목표는 당연히 고객만족이었습니다."
2006년 하나은행 등과 함께 첫 부동산자산운용사, 다올자산운용도 설립한 그는 지난해 또 한번 국내 최초를 기록했다. 자신 소유였던 다올신탁의 지분 대부분을 하나금융그룹에 넘기고 자신은 '하나다올신탁'의 최고경영자가 된 것. 국내 금융지주회사 CEO 가운데 2대 주주 신분을 갖고 있는 것은 그가 유일하다.
"잘나가는 회사를 왜 파느냐, 미쳤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죠. 하지만 저는 브랜드 파워를 키우고 금융대기업의 리스크 관리 기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동산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종합그룹을 만들어보겠다는 목표가 있습니다."
'한국의 도널드 트럼프'를 꿈꾸는 그는 문경에서 태어났다. 사업에 관한 소질은 광산을 운영했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 같다고 했다. "4형제 중 막내인데 형님들은 다들 샐러리맨입니다. 어릴 때 제일 말 안 듣던 저만 사업에 뛰어들었죠. 요즘도 한 달에 한 번은 부모님이 계신 문경에 다녀오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문경에서 가은초교'가은중을 졸업한 뒤 상경, 태릉고를 졸업하고 고려대 경영학과를 중퇴했다. 너무 바빠서 언제 학업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올해부터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되면서 부동산 시장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부동산 금융의 역할도 더 중요해지겠지요.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인 '하우스 푸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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