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기진의 육상이야기] 올림픽 없을때도 육상은 명맥 유지

고대올림픽

고대올림픽은 기원전 776년에 시작되어 4년마다 열렸다. 대회기간은 처음에는 하루였던 것이 7, 8회에는 3일, 나중에는 제례 행사를 포함해 5일로 늘었다. 경기종목은 제1회부터 제13회까지 육상경기의 단거리 경주뿐이었다. 이때 달리는 거리는 직선주로의 1스타디온으로 약 191.27m였다. 스타디온은 경주로의 길이와 경기장 내의 직선을 달리는 경기라는 뜻으로, 오늘날 스타디움(stadium)의 명칭으로 남아 있다. 출발선에는 너비 1.20m 정도의 발을 딛기에 편리하도록 홈이 파여 있는 출발용 돌이 나란히 놓여 있었으며, 출발은 고정된 돌 위에서 지금과 달리 선 자세로 행해졌다. 돌기둥으로 갈라져 있는 20개의 구획이 있어 20여 명이 동시에 경주할 수 있었다. 제14회부터는 2스타디온 달리기로 경기장의 주로를 1회 왕복하는 중거리 경주가 채택되었고, 제15회부터는 12∼24스타디온 달리기로 경기장 주로를 6∼12회 왕복하는 장거리 경주가 실시되었다.

달리기 종목만 실시했던 고대올림픽에 다른 경기종목이 추가된 것은 제18회 때(BC 708년)로, 5종 경기가 채택되었다. 그 후 육상경기의 달리기는 직선, 왕복, 장거리, 무장 경주 등 네 종류로 나뉘어 모두 맨발로 실시됐다. 도약에는 멀리뛰기, 높이뛰기, 뛰어내리기 등 세 종목이 있었는데, 멀리뛰기가 가장 중요시되었다. 5종 경기 종목은 멀리뛰기, 달리기, 원반던지기, 창던지기, 레슬링이었다. 우선 멀리뛰기를 해 일정한 거리를 뛴 사람만이 남아서 창던지기를 실시하고, 상위의 네 사람만이 191.27m의 단거리 달리기를 해 한 사람을 탈락시켰다. 이어 세 선수가 원반던지기를 실시, 한 사람을 탈락시켰고, 남은 두 사람이 마지막에 레슬링으로 최종 승자를 가렸다. 따라서 5종 경기는 신체를 균형적으로 발달시키는 데 알맞은 종목으로 고대 그리스인들이 균형적인 신체를 추구했다는 것을 잘 나타낸다. 선수로서의 참가자격은 엄격한 규정에 의해서 신성시되었으며, 우승한 선수에게는 제1회부터 제6회까지는 사과 열매가 주어졌으나, 제7회부터는 황금 낫으로 베어 만든 올리브 관과 야자열매가 주어졌다. 그만큼 우승의 가치가 물질적인 상품이 아니라 명예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고대올림픽은 해를 거듭할수록 승자에게 과도한 명예와 부가 주어지면서 점차적으로 프로화되는 경향을 나타냈다. 프로화된 선수는 유명 경기에서 이기면 명예와 수입이 늘어나기 때문에 새롭고 특별한 훈련으로 오로지 경기력 향상에만 힘썼고 교양이나 아름다움, 건강 등은 돌보지 않게 되었다. 올림픽 우승이라는 영예를 노리는 프로화된 선수가 경기에 참가하면서부터 정신과 신체의 조화로운 발달을 꾀했던 올림피아의 정신은 사라져 버렸다. 고대올림픽은 그리스가 마케도니아에 정복되고, 또 로마에 의하여 지배받게 된 후에도 계속하여 행해졌으나, 주로 프로화된 선수의 경기를 구경하는 오락적이고 흥미 위주의 행사로 전락하게 되었다. 판크라티온, 복싱 등과 같이 보고 즐기는 위험한 운동이 성행하였다. 고대올림픽은 디오니시우스 1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기독교를 위하여 다른 종교를 금하였기 때문에 기원전 393년 제293회를 마지막으로 오랜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되고 그 후 올림피아 신전과 많은 경기장 시설도 파괴되었다. 그러나 육상경기는 그 명맥을 계속해서 유지해왔으며, 1859년 그리스가 터키의 지배 하에서 독립한 것을 기념하는 경기대회에서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김기진 계명대 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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