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저는 20대 여성 입학금이 없어…" 사이버 앵벌이 기승

갈수록 지능화…카페 특성 맞춰 '맞춤형' 사기

#.저는 미모의 20대 여성입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합격했는데 입학금이 없어요. 대학 등록이 코앞인데 보름 안에 500만원을 벌 방법을 궁리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술집밖에 생각나지 않습니다. 부모님은 "우리 형편에 무슨 대학이냐"며 화만 내십니다. 술집에서 일하는 방법밖에 없을까요?

#.전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빚쟁이들이 집에 찾아와 난동을 부리고 갔습니다. 남편은 집을 나갔고 양가 부모님은 아이라도 맡길까봐 선을 긋습니다. 집주인이 일주일 안에 밀린 월세 300만원을 내지 않으면 집을 비우라는데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길거리로 나앉을 것 같습니다.

최근 수만 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는 인터넷 카페 두 곳에 이러한 사연의 글이 올라왔다. 사연이 오르자 각 커뮤니티 회원들은 주인공을 돕기 위해 너도나도 지갑을 열었다. 하지만 이내 거짓말임이 밝혀졌고, 사기꾼을 잡기 위해 많은 회원들이 경찰에 신고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최근 인터넷 카페와 채팅방 등을 통해 돈을 구걸하는 '사이버 앵벌이'가 날로 지능화하고 있다. 과거 불특정 다수에게 무작위로 슬픈 사연의 이메일을 발송하던 방식에서 요즘은 인터넷 모임의 특성에 맞춰 '맞춤형'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

남성 회원이 많은 카페에서는 '여성의 미모'를 미끼로 사기를 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사기를 치는 이들은 자신을 미모의 여인으로 소개하면서 인물이 좋은 다른 여성의 사진까지 올려 회원들의 마음을 자극한다. 이 때문에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인기글'로 주목받는 경우가 많다. 남성 회원들은 "예쁜 여자가 거짓말할 리가 없다" "공부 열심히 해서 꼭 성공하라"는 등의 댓글을 달았고 등록금에 보태라며 돈까지 송금했다.

상대적으로 주부 회원이 많은 카페에서는 모성애를 자극하는 수법을 쓴다. 한 여성은 아이들의 사진까지 올려 "이 철없는 아이들을 어쩔까요? 아이들을 다 시댁에 보내고 저는 장기를 팔아서 애들 생활비를 마련한 뒤 자살을 해야겠다"는 내용의 글을 썼고, 회원들은 "아이들 사진까지 공개한 사람이 거짓말을 할 리 없다"며 돈은 물론 아이들 옷과 책까지 선물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결과 그는 주식 중독자였고 주식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이들 사진까지 공개하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북대 김지호 교수(심리학과)는 "불특정 다수에게 대량의 스팸 메일을 발송하는 데는 기술적인 어려움도 있고 메일 발송량에 비해 도움을 주는 사람이 적어서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요즘은 온라인 카페에서 쌓은 유대 관계와 신뢰를 악용하면 성공률이 높아 이를 노린 '사이버 앵벌이'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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