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경찰서는 이달 2일 수성구 파동의 주택가 횡단보도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사망사건의 가해자(신호위반)를 가리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이날 횡단보도를 건너던 할머니(77)가 개인택시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졌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사고 개인택시에 차량용 블랙박스가 설치된 것을 확인했고, 할머니와 택시기사 중 누가 신호를 위반했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경찰은 블랙박스 메모리카드에 저장된 동영상을 확인한 뒤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사고 원인을 밝힐 결정적 증거가 나오길 기대했던 블랙박스에 사고 당시 상황을 담은 동영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사고 직전까지의 상황은 모두 남아 있었는데 사고 당시의 영상만 없었다"고 허탈해 했다.
사고 순간의 영상만 사라진 이유는 뭘까? 블랙박스에 숨겨진 공공연한 '비밀' 때문이다. 블랙박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블랙박스에 전류가 흐르는 동안 메모리카드를 제거해버리면 제거 직전 1~5분가량의 영상이 삭제된다. 차량 시동이 켜진 상황에서 블랙박스의 메모리카드를 강제로 뺄 경우 최대 5분가량의 영상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블랙박스 판매업체 관계자는 "차량 시동을 끈 뒤 블랙박스의 메모리카드를 빼내야 영상이 저장되지 않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고를 낸 택시 기사는 경찰조사에서 "사고 직후 증거가 사라질까봐 증거 확보를 위해 황급히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은 택시 기사가 이런 블랙박스에 숨겨진 '비밀'을 알고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을 의도적으로 숨기기 위해 메모리카드를 뽑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른 택시 기사들도 "차량용 블랙박스는 사고 시 유리한 상황만 이용하고, 불리한 경우 시동이 걸린 상태에서 메모리카드를 빼내 사고 영상을 지우는 방법을 쓰는 기사도 있다"고 했다.
수성경찰서 관계자는 "교통사고 시 운전사가 유·불리에 따라 임의대로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뽑을 수 있어 사고 원인을 밝히는 데 한계가 있다"며 "운전자가 함부로 블랙박스의 메모리카드를 제거할 수 없도록 제도적·기술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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