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미술] 실물 크기로 사실적으로 그린 과수원의 농가

* 폴 사키시안(Paul Sarkisian·1909~1977) 작 - Mapleton(406 x 826cm)
* 폴 사키시안(Paul Sarkisian·1909~1977) 작 - Mapleton(406 x 826cm)

언젠가 잘츠부르크를 갔을 때 그곳 현대미술관에서 마침 전후 미국의 하이퍼리얼리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거기서 딱 한 번 봤던 이 그림이 그후로 잊을 수 없는 작품이 됐다. 그림의 규모가 가로 8m, 높이 4m가 훨씬 넘는 거대한 크기로, 실물 집을 실사로 옮겨 놓은 것 같다. 더욱이 화면에 등장하는 각종 디테일의 세세한 묘사를 들여다보노라면 어느 새 전시장이 아닌 실제 그림의 풍경 안에 들어온 듯 착각에 빠진다. 생체 해부를 보는 듯 생생한 묘사의 핍진성도 놀랍지만 작가의 탁월한 상상력이 더욱 매력적이다. 건물의 바깥에 빼곡히 내걸린 수없이 많은 가재도구들과 각종 잡동사니들은 한때는 사용되다가 집과 함께 버려진 주인 잃은 물건들로서 마치 현재 실제 풍경인 것처럼 벽면에 전시된 채로 제시되어 있다. 집안의 모든 물건이 밖으로 소환되어 일시에 모습을 드러낸 이 모습은 수많은 사진들을 참조해 옮긴 작가의 구성이다. 전체 그림이 색채가 없는 납 빛 모노크롬화인데다 스프레이건을 사용한 기계적인 재현으로 회화가 아니라 사진과 혼동을 일으킨다. 이 독특한 분위기로 말미암아 환기되는 정서가 너무나 인상적인데 시간은 아득한 과거의 한 시점으로 되돌아가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소리를 들려주는 듯하다.

김영동(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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