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조직적인 왕따가 된 찰스 보이콧

요즘 '보이콧'(boycott)이라는 말이 신문에 자주 오르내린다. 자신들의 이익이나 입장을 지키기 위해 '공동으로 거절하고 거부하는' 사건이 워낙 많다보니 그런 모양이다. 이 말은 토지 관리인이었던 찰스 보이콧(1832~1897)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1832년 오늘, 영국 노퍽에서 태어나 어릴때부터 평범했다. 왕립사관학교에 들어갔다가 성적부진으로 쫒겨났지만 우여곡절끝에 육군 장교가 돼 식민지인 아일랜드에 주둔했다. 대위로 제대한 후 그곳에서 언 백작의 영지 관리인으로 일했다. 1880년 흉작으로 아일랜드 토지동맹이 소작료 25% 삭감을 요구했으나 그는 이를 거부했다.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폭력을 쓰지 않는 대신 그와 어떠한 접촉도 하지 말자는 운동을 벌였다. 이웃들은 말조차 걸지 않았고 가게들은 물건을 팔지 않았다. '조직적인 왕따'의 피해자가 된 그는 그해말 영국으로 돌아갔다. 이 사건이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평범한 마름에 불과한 그도 유명인사(?)가 됐다.

당시 시대상황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보이콧'을 '보이콧'하는 것이 어떨까.

박병선(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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