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병휘의 교열 斷想] 성실한 친구

열등감은 좌절을 겪을 때 생기는 감정이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남들이 자신을 깔본다고 생각해 불쾌한 감정을 지니게 된다. 흔히 열등감은 가진 게 없을 때 생긴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보다 앞서 힘든 일에 부딪쳐 보기도 전에 자신이 없다고 좌절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체험하겠지만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쥐새끼들까지 깐보고 갑돌이 밥그릇을 죄 비워 놓기도 했었습니다." "그들은 소수 세력을 깔보고 중요 사안을 제멋대로 처리했다."

앞서의 문장에 나오는 '깐보고' '깔보고'에서 '깐보고'는 '깔보고'의 잘못이다. '깐보다'는 어떤 형편이나 기회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가늠하다 또는 속을 떠보다, '깔보다'는 남을 호락호락하게 얕잡아보다는 뜻으로 '깐보다'로 표기하면 안 된다. "일을 깐보아 가며 대처해야겠다." "어리다고 그 아이를 무시하고 깔보다가는 큰코다친다."로 쓰인다.

'불쾌하다'와 '불콰하다'도 헷갈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감기 몸살 때문에 몹시 불콰하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에 먼 봉우리는 자줏빛이 되어 가고 그 반영에 하늘까지 불쾌하다."라는 문장에 나오는 '불콰하다'와 '불쾌하다'는 서로 바꾸어 표기해야 옳은 표현이다.

'불쾌하다'는 못마땅하여 기분이 좋지 아니하다거나 몸이 찌뿌드드하고 좋지 않다라는 뜻으로 '불쾌한 감정' '불쾌한 일' '불쾌한 냄새' 등으로 쓰인다.

'불콰하다'는 얼굴빛이 술기운을 띠거나 혈기가 좋아 불그레하다라는 뜻을 가지며 "초조함을 달래기 위해 초저녁부터 찔끔찔끔 마시기 시작한 술기운으로 얼굴이 더욱 불콰하게 물들어 있었다."로 활용한다.

"부드러운 말씨는 친구들을 많게 하고, 우아한 말은 정중한 인사를 많이 받게 한다. 성실한 친구는 든든한 피난처로서, 그를 얻으면 보물을 얻은 셈이다. 성실한 친구는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 어떤 저울로도 그의 가치를 달 수 없다."(집회서 6장 5~16절)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그러나 누구에겐가 꼭 털어놓고 싶은 자신만의 부끄러운 비밀이 있는 경우가 있다. 정신적인 것이든지, 육체적인 것이든지, 자신이 안고 있는 말 못할 비밀은 삶을 늘 무겁게 만들고 내적 자유를 잃게 만든다. 이럴 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있다면 너무나 행복할 것이다. 그런 친구 앞에서 엉엉 울며 나만의 아픔을 하소연할 수 있다면 열등감은 남의 일이 될 수 있으리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대를 얕잡아보기보다 존중하고, 불쾌하게 하기보다 유쾌한 감정을 주는 만인의 친구, 이런 사람이 되어 보면 좋지 않겠는가.

  교정부장 sbh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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