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본인 워낙 침착해서…" 김은연씨 센다이 탈출기

"가까운 해안마을 초토화 꿈에도…" 이튿날 기숙사에 갇혀

"지진 처음엔 주변 일본인들 대부분이 침착한 모습이어서 '이 정도 지진은 자주 있구나'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 정도로 큰 피해가 있었을 줄은…."

규모 9.0의 초강진이 일본 열도를 뒤흔든 11일 오후. 미야기현 센다이 시 도호쿠(東北) 대학에 다니는 교환학생 김은연(23·영남대 일어일문과) 씨는 시내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김 씨가 지난해 9월 1년 기간으로 유학 온 도호쿠 대학은 한국인 유학생 200여 명이 다니는 국립 종합대학이다.

약속 장소인 센다이 시내로 향하는 김 씨의 발걸음은 한가한 금요일 오후만큼이나 가벼웠다. 저 멀리 다가오는 버스를 향해 시선이 향하던 순간, 땅이 출렁거렸다. "갑자기 전봇대가 흔들거리고, 건물이 휘청댔어요. 전통 가옥에선 기왓장이 우르르 떨어졌고요.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어요." 김 씨는 이때만 해도 지진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전날 밤에도 규모 3,4의 지진이 있었지만 침대만 조금 흔들렸을 뿐, 주변 일본인들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40분이나 기다렸지만 버스는 오지 않았고 그 동안에도 여진은 계속됐다. 불안한 발걸음으로 돌아온 기숙사 방은 전기, 가스, 수도가 끊어진 채 가재도구가 뒤엉켜 있었다.

전화는 불통이었다. 창 밖의 도시도 온통 암흑천지였다. 할 수 없이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에선 '규모 8.8의 지진과 쓰나미로 많은 인명피해가 예상된다. 여진을 주의하라'는 내용이 계속 흘러나왔다. 이튿날에도 하루종일 기숙사에 갇혀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그제서야 알았어요. 센다이 시내는 비교적 피해가 가벼웠지만 가까운 해안가 마을은 쓰나미에 초토화됐다는 것을요. 친구들한테 들으니까 학교에서는 지진이 오기 몇 초 전에 경보가 내려 다들 책상 아래로 숨었다고 하더군요." 셋째 날인 일요일엔 먹을 거리를 구하러 밖으로 나왔다. 부서진 편의점에선 점원이 팔 수 있을 만한 것들을 골라내고 있었다. 빵과 물을 샀지만 허기를 채우기엔 모자랐다. 대피소가 있는 인근의 니시야마 중학교로 향했다. 아직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대피민들의 행렬에 끼어 주먹밥을 먹을 수 있었다.

'한국으로 전화를 연결해주겠다'던 총영사관의 약속은 13일 밤에야 이뤄졌다. 지난 3일간 대구의 가족들은 얼마나 피를 말리며 걱정했을까. 일단 무사함을 알렸지만 더 이상의 안전도 확실치 않은 상황. 14일 오전 7시쯤, 일어나자마자 주 센다이 한국 총영사관으로 이동했다. 전기도 복구되고 도로에는 차도 다녔지만 긴장감이 역력했다. "총영사관에 도착하니 50명 정도 되는 한국인들이 모여 있더군요. 몇 사람은 택시를 빌려 야마가타로 간다는 분도 있었는데, 저는 오전 8시쯤 일행 10명과 함께 오사카로 향했어요." 김 씨는 "14일 오후 1시쯤 오사카 항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배를 타게 될 것"이라며 "웬만하면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남은 공부를 마치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말끝을 흐렸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