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킬링 필드'(Killing Fields)를 다시 봤다. 공산당 치하 캄보디아에서 자행된 학살의 흔적을 둘러본 뒤라 모든 장면 하나 하나가 새롭게 다가왔다. 캄보디아 어디를 가나 남아있는 '크메르 루주'(Khmer Rouge) 잔혹 정치의 잔재들. 약 30년 전의 영화 속 장면은 과거 속의 일만이 아니었다.
◆임자 없는 백골의 무덤
프놈 삼빠우(Phnom Sampeau). 바탐방(Battambang)에서 툭툭(오토바이 택시)을 타고 1시간 남짓 달리면 나오는 이곳에 '킬링 케이브'(Killing Caves)가 있다. '죽음의 동굴'이란 이름만으로 어떤 곳인지 쉽게 감이 오는 곳이다.
동굴을 찾아 산길을 올랐다. 이미 햇살이 기울기 시작하는 시점. 그늘이 드리운 동굴 입구에서 왠지 모르게 스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인적도 드문 곳. 이념 때문에 무고하게 죽임을 당한 이들의 원이 서려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
좁은 동굴 틈으로 몸을 밀어 넣으며 벼랑 끝을 올려다봤다. 크메르 루주가 죽인 시체가 떨어지는 장면이 떠올랐다. 어설픈 솜씨의 안내판 그림은 영화 속에서나 나왔어야 할 것이었다.
임자를 알 수 없는 백골을 모아 놓은 추모함. 자신들의 이념과 노선에 맞지 않는 인물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처형한 크메르 루주. 이로 인해 온가족이 희생당해 유골을 수습할 핏줄 한 명 없는 이들이다. 인간의 이성을 의심하게 만든 인류의 아픈 역사의 피해자들. 이들에 대한 한없는 연민이 느껴졌다. 입구에 들어앉은 와불만이 이들의 원혼을 달래주고 있었다.
◆프놈펜 대학살의 현장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Phnom Penh)에는 '뚜얼 슬렝(Tuol Sleng) 대학살 박물관'이 있다. 고등학교를 개조한 비밀 수용소로 '보안 감옥 21'(S-21)이라 불렸다. 정권을 잡은 크메르 루주가 전 정권 출신 관료를 비롯한 지식인(이후에는 크메르 루주 고위 간부까지 포함)을 잡아다 고문하고 살해한 악명 높은 곳이다. 1975~79년 4년 사이 이곳을 거쳐 간 인원만 1만7천 명(혹은 2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지금은 주택가에 위치한 작은 공원 같은 곳. 그러나 수용자를 대상으로 고문과 학살이 끊임없이 자행된 흔적은 여전했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운동장 한쪽, 베트남군에 쫓긴 크메르 루주가 미처 처리하지 못하고 떠난 14구의 시체를 묻은 공동묘지가 있었다. 발견 당시 그대로 남겨 놓은 고문실에는 고문 도구가 남아 있었다. 바닥에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혈흔이 당시의 처참한 현장을 고발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 층을 가득 채운 수용자들의 증명사진. 그들의 눈빛에는 공포 아니면 분노가 가득했다. 실제로는 아무런 죄가 없이 끌려온 사람들, 한 번 들어가면 살아서는 나올 수 없었던 수용소, 도착하는 순간 들려오는 비명 소리와 피비린내…. 제정신을 차리기 힘든 이들이 카메라 앞에서 드러낸 표정은 S-21의 당시 상황을 웅변하고 있었다.
철조망 사이로 운동장을 내려다봤다. 어리석은 인간의 역사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라고 있는 나무들. 이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을 헤아리고나 있을까?
◆끝나지 않는 피해
크메르 루주 치하에서 처형된 사람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캄보디아 전역 수천 개의 매장 지역에서만 139만 구의 시체가 확인됐다고 한다. 보통 150만~200만 명으로 인용을 많이 하는데, 이는 당시 캄보디아 인구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 그 결과는 대대적인 '사회 퇴보'였다.
지식인은 모두 숙청하고 기술은 무시한 때문이다. 그 이후 캄보디아 국민 대부분은 아직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재캄보디아 한인들 중에는 '캄보디아 애들은 뭐를 해도 느릿느릿하고 서툴다'며 불평하는 경우가 많다. 되짚어 보면 '이게 다 크메르 루주 탓'이다.
크메르 루주 집권으로 인한 피해의 다른 양상은 지뢰로 인한 것이다. 1970년대 내전 동안 캄보디아 전역에 설치한 지뢰가 무려 1천만 개에 달한다. UN을 대표로 하는 각국의 노력으로 많은 수가 제거되긴 했지만, 여전히 매년 100여 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지금도 북부 산간 지역에는 '지뢰 위험 구역'(Mine, Danger)이라는 경고판이 붙은 곳이 많다. 이는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됨을 뜻한다. 씨엠립 거리에서는 지뢰 때문에 다리나 팔을 잃은 희생자들이 구걸하거나 물품을 파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씨엠립 외곽에 위치한 '지뢰 박물관'은 그 심각성을 일깨우는 곳이다. 캄보디아 내전 시 소년병 출신인 아키라(Aki Ra)가 자신이 직접 제거한 지뢰와 포탄 등을 전시하고 있다. 지뢰 피해 어린이들을 보호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캄보디아 국가 전체에 이토록 큰 피해를 입힌 주역들에 대한 단죄는 현재 진행형이다. 캄보디아 정부의 비협조 때문이었다. UN은 캄보디아 정부와 약 10년 동안 협상을 벌인 끝에야 2006년 겨우 전범재판소를 설립했다. 이후에도 훈센 총리는 2009년 "크메르 루주 관련 재판이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7월 말에야 S-21 소장이 전쟁범죄 혐의를 인정받아 35년형이 선고됐다. 크메르 루주 정권 지도자 가운데는 첫 사례였다. 지도자인 폴 포트는 입을 다문 채 연금 상태로 1998년 숨을 거뒀다. 자신의 죄를 시인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매우 낯익은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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