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가명'61) 씨는 지난주 트럭을 팔았다. 30년 넘게 과일 장사를 하다 10년 만에 장만한 트럭은 그에게 자식과도 같았다. 트럭 짐칸에 담겨 있는 것은 비단 과일만이 아니었다. 정 씨의 땀과 눈물이 함께 뒤섞여 있었던 그 짐칸에는 휴일도 없이 1t 트럭에 몸을 싣고 전국을 누볐던 자신의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하지만 당뇨 합병증은 정 씨의 왼쪽 다리를 잘라내게 했고, 점점 그의 목을 옥죄고 있었다.
◆아버지의 트럭
"맛있는 사과 사세요. 사과!" 정 씨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떠돌이 과일 장수'가 천직이라고 여기며 살았다. 그는 전국을 떠돌았다. 포도는 경북 경산에서, 딸기는 경남 진주에서 구입했다. 신선하고 싼 과일을 찾아 산지에서 물건을 샀다. 과일 장사는 늘 시간에 쫓기는 일이었다. "안 팔면 과일이 썩으니까 더 멀리 다녔지요." 정 씨는 안 가본 곳이 없다. 강원도에서 전라도까지, 대구에서 못다 판 과일을 팔기 위해 팔도를 떠돌아 다녔다. 몇천원이라도 더 아껴 기름값에 보태려고 찜질방에서 쪽잠을 자는 날도 많았다.
그가 이렇게 트럭을 타고 장사를 한 것은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이전에는 손수레에 과일을 싣고 대구 변두리를 맴돌았다. "못 배운 놈이 딱히 할 일이 있나요." 초등학교도 못 마친 정 씨는 생선과 야채, 과일 따위를 팔며 아버지의 책임을 다했다. 그렇게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결국 중고 트럭을 장만했다. 정 씨는 트럭 속에 자신의 꿈을 담았다. 과일을 더 많이 팔아 자식들 시집 장가 갈 때 몇 푼이라도 보태주는 당당한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정 씨는 휴일도 없이 일했다. 과일 장수에게 주말은 '대목'이었다. 끼니는 대충 때우고 아등바등 일하다 몸이 보내오는 경고를 애써 무시했다. 오래전부터 앓아온 당뇨와 고혈압, 발가락에 하나둘씩 늘어가는 물집, 흐릿해져 가는 왼쪽 시력. 몸은 끊임없이 신호를 보냈지만 정 씨는 치료를 '내일'로 미뤘다. 건강은 그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지난달 21일 정 씨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병원에 일찍 올 것을." 그는 이렇게 뒤늦은 후회를 할 뿐이다.
◆불안한 가족들
정 씨의 부인 김현자(가명'60) 씨는 매일 새벽같이 출근한다. 김 씨는 아파트 청소를 한다. 오전 6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일해서 손에 쥐는 돈은 70만원이 채 안 된다. 김 씨의 삶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다. 몇 년 전에는 새벽에 버스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했다. 버스 바닥에 남아있던 물기 때문에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쳤다. 아직도 후유증이 남아 지금도 심각한 두통과 귀에서 웅웅거리는 소리를 견디며 산다.
아들 명규(가명'30) 씨는 2년 전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떠났다. 공고를 졸업하고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식당 아르바이트와 막노동을 하다가 상경했다. 주방장을 꿈꾸는 아들은 지금 식당에서 설거지와 서빙을 하며 한 달에 140만원 남짓한 돈을 번다. 4대보험이 적용되는 직장이지만 불안한 '비정규직' 신분이라 휴가를 내서 아버지 얼굴을 보러 대구에 올 수 없다.
큰딸 현주(가명'33) 씨는 지난달 빵집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아버지 병간호를 위해서였다. 대구 한 대학 원예학과를 졸업한 현주 씨는 꽃으로 액세서리를 만드는 압화 공예를 했었다. 하지만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 여태 번 돈만 몽땅 날리고 말았다. 꽃을 사랑하는 현주 씨는 꽃 대신 빵을 팔았다. 힘들게 과일을 파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병마 앞에서 맥없이 무너졌다. 아버지가 쓰러졌던 그날 현주 씨는 아버지를 등에 업고 병원 3곳을 돌았다. "아빠, 죽으면 안 돼." 그리고 지금 현주 씨는 아버지 옆을 지키고 있다.
◆위태로운 보금자리
정 씨 가족은 한 번도 자신의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 지금도 전셋집에서 10년째 계약을 연장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전 집 주인이 한 재개발업자에게 집을 넘기면서 문제가 생겼다. 현주 씨는 "몇 달 전에는 낯선 사람들이 집에 찾아와서 '집주인이 부도가 나 이 집을 경매에 넘겨야 하니 다른 곳으로 잠시 옮겨달라'고 하더라"며 울먹였다. 전세금도 못 받고 내쫓기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된 것도 지난해부터 반복된 집 문제 때문이었다. 집 부엌이 곰팡이로 뒤덮이고, 하수관이 터져도 집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썩은 발을 이끌고 정 씨가 법원 문턱까지 갔던 것도 모든 것이 불안한 지금의 상황 때문이었다.
현재 정 씨 가족은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부양의무자조항이 이들 가족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미혼인 정 씨 아들이 서울에서 버는 돈 140만원과 아내의 소득 70만원이 있으니 정부의 생계비 지원 대상이 아니다. 사정은 이렇지만 눈치 없는 병원비는 계속 불어난다. 한 달간 쌓인 입원비와 치료비, 수술비만 500만원이 넘고 앞으로 얼마나 더 병원비가 들어갈지 알 수 없다. 불안한 삶을 지탱하고 있던 정 씨는 14일 오후 왼쪽 다리 무릎 밑까지 잘라냈다. 지금 두 다리로 걸을 수 없다는 현실보다 그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무너진 가장의 어깨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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