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일본이여 울지 말라

서기 79년에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멸망한 폼페이는 그 당시 거의 완벽한 도시였다. 이미 700년의 역사를 기록한 유서 깊은 도시였으며, 아우구스투스 시절부터 시행한 대규모의 도시 재개발로 인해 로마에 인접한 최고의 휴양도시로 발전하고 있었다. 주변의 땅은 기름져서 풍부한 농작물을 생산하고 있었고, 항구에 접한 까닭에 물자의 보급이 손쉬웠으며, 계곡 속에 우뚝 솟아 외적의 침범에서도 자유로운 지형조건을 충족한 도시였다. 2만 명의 인구는 도시로서 모든 요소와 조직을 갖추기에 적절한 크기였다. 포럼의 주변에는 장엄한 신전들과 공회당들이 적절한 간격으로 들어서 도시의 위엄을 과시하였고, 여기서 뻗은 도로들은 완벽하게 도시의 모든 곳을 소통시켜 주고 있었다. 여러 마당을 가진 큰 집이 있는가 하면 단출한 집도 옆에 붙어 있었으며, 화려한 집과 소박한 집이 같이 이웃하였다. 신분의 차이에도 서로를 의탁하며 동네를 형성하였다.

곡선으로 휘어져 후미진 거리에는 어김없이 목로주점이 있었고, 그 건너편 골목 안의 집은 하룻밤 정을 나누는 거리의 여인들이 사는 집이었다. 계곡과 이웃해서는 완벽한 형태의 노천극장에서 매일 희극이 상연되었고, 언덕 너머의 경마장에서는 늘 함성이 들렸다. 놀랍게도, 도시에는 수백 명을 동시에 목욕시킬 수 있는 대중탕이 네 개나 있었다. 물은 공중의 수도관로를 통해 인근의 수원지에서 풍족히 공급받았으며, 이의 관리는 고위직의 공무원이 맡을 정도로 목욕은 시민들에게 중요한 도시 일상이었다.

로마에서 휴양차 끊임없이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느라 도시는 늘 분주했고, 이로 인해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재미와 활력, 모험과 스릴이 넘쳤다. 그야말로 교역의 요충지였고 역사문화도시였으며, 휴양과 위락의 도시였다. 자연히 문화와 예술이 만발하고, 자유와 평화가 도시에 넘쳐났다. 도시의 북쪽에 위치한 베수비오산은 마치 이 모든 번영을 영원히 지켜줄 듯 우뚝 솟아있었으니, 폼페이 시민들은 이 늠름한 산에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가지고 있었을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믿었던 산이, 그러나 한순간에 폭발하여 모든 것을 앗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불의 신을 위한 축제를 즐긴 다음날 베수비오 화산은 불덩이를 폭발해 내었다. 250℃나 되는 열기가 도시를 휘감았고, 화산재는 25m 두께로 도시 전역을 덮었다. 더러는 목욕 중 발가벗은 채로, 더러는 술집과 거리에서, 더러는 공연장에서, 혹은 신전에서, 일상을 평화롭게 보내던 모든 시민들의 일상적 삶의 순간을 그대로 영원히 멈추게 하고만 것이었다.

십수년 전, 이 폐허의 도시를 가서 답사하며 그 원형을 상상하고 나서 충격을 받고 말았다. 내가 믿는 이상적 도시의 모든 요소가 이미 2천 년 전의 이 도시에 다 있었던 것이었다. 너무도 완벽한 도시였다. 선과 악, 행과 불행을 선택할 수 있는 도시였고, 빈자와 부자, 낮은 자와 높은 자 등 신분과 계급이 공존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도시였다. 공공은 철저히 도시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했고, 기반시설은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기에 완벽했다. 어쩌면 이제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정도로 인간의 자존적 지위를 과시하는 도시였을 수 있다. 그래서 멸망했을까? 결국은 자연이 이를 가만두지 않았다.

일본이 당하는 비극을 보며 이 폼페이가 생각났다. 어쩌면 폼페이가 비교될 수 없는 더 큰 참상일지도 모른다. 한 도시가 아니라 여러 도시이며, 2만 명의 숫자를 훨씬 뛰어넘는데도, 땅으로부터 바다로부터 하늘로부터 비롯된 미증유의 참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현대세계에서 가장 진보했으며, 놀라운 자율국가 일본에서 일어난 일 아닌가?

자연은 인간이 만든 사회나 문명보다 더 큰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숱한 자연의 혹독함 앞에서 겸손을 배우며 우리가 늘 진보해온 것도 사실이다. 역사 속 우리의 삶터가 수없이 자연의 힘에 짓이겨졌어도, 우리의 삶이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은 그 어떤 경우에도 꺾지 못했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도 인류는 늘 진보하였고, 멸망된 폼페이보다 더 자랑스러운 도시들을 세우며 결국 우리의 지경을 넓혀왔다. 그게 우리 인간만이 갖는 존엄이었다.

일본의 이 엄청난 비극에도 우리 인류의 아름다운 삶이 지속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히려 우리를 더욱 공고히 하며 우리의 존엄을 더욱 빛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일본이여 울지 말라. 인간의 존엄으로 딛고 일어서, 역사 속에 빛으로 오라.

승효상(건축가·2011 광주디자인비엔날레총감독)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