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과거는 과거, 절망에 빠진 사람 도와야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지진과 쓰나미 피해로 수많은 목숨이 희생된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며 일본을 돕자고 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지진과 쓰나미 피해로 수많은 목숨이 희생된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며 일본을 돕자고 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해선 안 되지."

16일 만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3'대구 달서구 상인동) 할머니는 대지진과 지진해일로 고통받고 있는 일본을 바라보며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안겨 준 일본이지만 무고한 생명들이 희생되는 모습에 분노보다는 안타까움이 앞섰다고도 했다.

"TV 화면으로 쓰나미가 마을을 덮치는 광경이 나오는데 손이 덜덜 떨렸어요. 일본이 과거에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분명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되잖아요."

할머니는 66년 전에 겪었던 고통스러운 순간이 지금도 뼛속까지 사무쳐 있지만 고통과 절망에 빠진 일본인들을 도와야 한다고 했다.

1944년 10월의 어느 날 밤, 열여섯 살 소녀는 군인들이 겨눈 총부리 앞에 내몰리듯 기차에 올라탔다. 집으로 보내달라며 애원하는 소녀에게 돌아온 건 무자비한 군홧발과 몽둥이세례였다. 소녀는 대구역에서 경주로, 다시 평양으로 실려 다니며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얻어맞았다. "차가운 개울물에 달달 떨고 있던 도라지꽃이 내 처지 같아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생사의 기로에 서길 수차례. 다행히 따뜻한 마음씨의 가미카제 대원을 만나 목숨을 건졌고, 폭격으로 무너진 방공호에서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에 대해 이 할머니는 "우리는 악랄하게 하면 안 된다"고 거듭 말했다. "진작에 과거사와 위안부 문제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하지만 우리 국민들이 과거사를 넘어 일본을 돕는다면 일본 국민들도 더 정신을 차릴 거예요."

일본이 빨리 참사를 딛고 일어서야 위안부 문제도 잘 해결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 할머니의 선한 마음 덕분일까. 본의 아니게 일본인 부부도 이 할머니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대지진이 일본을 덮치기 하루 전인 이달 10일. 이 할머니의 일본 초청 강연을 의논하기 위해 아오야키 부부가 할머니를 방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부의 집은 쓰나미가 덮쳤던 센다이시(市) 아오바구(區)였다. 이 할머니는 "아오야키 부부가 나를 만나러 한국에 온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고 하더라"며 다행이라고 했다. 이 할머니는 연락이 끊겼던 재일조선인 위안부 피해자인 송신도 할머니가 이번 지진에서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기뻐했다. 송 할머니는 가장 큰 지진 피해를 입었던 미야기현에 살고 있다.

이 할머니뿐만 아니라 과거사 관련 시민단체들도 대지진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일본 돕기에 나서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 모임인 나눔의 집과 민족문제연구소 등 한일 과거사 청산과 관련한 시민단체 32곳은 15일 공동 성명을 내고 "한일 과거사를 잊지 말아야 하지만, 이 엄청난 재난에 대해 일본시민과 재일동포를 비롯한 주일 외국인 등 모든 분들께 위로와 격려 그리고 협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매주 수요일 위안부 할머니들이 여는 수요집회도 침묵시위와 추모식으로 대체하고 일본을 도우자고 했다. 안경욱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대표는 "역사적 감정은 좋지 않지만 일본이 마주한 커다란 재앙 앞에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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