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저 바라보면~"이란 광고 카피 혹시 기억하시나요? 사람과 사람이 소통을 하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수단은 다양하겠지만 눈빛만으로, 혹은 분위기만으로 마음이 통할 때 참 기분이 좋습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혈투'의 주인공 박희순(이하 박 배우) 씨는 그런 면에서 묘한 매력을 가진 소유자 중 한 명입니다.
공교롭게 여러 차례 그와 인터뷰를 한 기자는 박 배우를 만날 때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떱니다. '남자끼리도 이런 대화가 가능하구나'를 느끼게 되는 순간이죠. '무장해제'란 말을 이럴 때 써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격의 없는 대화, 그리고 잠시 말 없이 정적이 흐르는 순간마저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은 떠오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런 그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은 참 가볍습니다. 그리고 즐겁지요. 이번 인터뷰를 위해 서울 삼청동 길을 버선발까지는 아니지만 한달음에 찾으면서도 기자의 기대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를 만나기로 한 카페의 문을 열었습니다. '찰칵 찰칵' 인터뷰 기사에 쓸 사진을 찍고 있는 박 배우가 보입니다. 평소와 다르게 컬러풀한 의상을 입은 그의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안 어울려서가 아니라 카리스마 넘치는 이미지의 그에게도 귀여움이란 이미지를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죠.
드디어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았습니다. 나름 자주 만나게 되는 인연에 대해 기자가 입을 열자 그는 특유의 '박 배우식 유머(?)'로 응대합니다. "(다른 기자가 싫다고 해서) 재수 없이 걸려서 왔죠?" 자그마한 카페가 온전히 기자와 박 배우의 웃음만으로 가득합니다. 다시 한 번 기자는 속으로 되뇝니다. "역시 손들기를 잘했어."
우선 영화 이야기를 먼저 꺼냈습니다. 이번 작품 '혈투'는 그가 스크린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사극 연기라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이기에 선택의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모든 연기가 쉬운 것은 없지만 특히나 사극이란 장르는 어렵다고 정평이 나 있죠. 아무래도 경험을 해볼 수가 없다는 것, 그리고 대사의 처리나 시대의 상황 등이 지금과 많이 다르다는 것이 주된 이유일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연기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한 박 배우는 어땠을까요?
"사실 연극 할 때 창작극을 많이 하면서 사극도 꽤 했어요. 사도세자나 이춘풍 역 등을 해봤죠. 특히 사도세자 할 때는 발광을 했어요. 사도세자가 옷을 못 입는 의대증이란 병이 있어서 이를 극대화해 당시에 제가 무대 위에서 팬티만 입고 계속 돌아다니며 광기를 뿜어낸 적이 있었죠.(웃음) 그래서 나름 '내가 영화판에서 사극을 하면 새로운 것, 기존에 해왔던 사극이 아닌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극을 하고 싶다'란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마침 '혈투'를 해보자는 제의가 들어왔고, '이제 해볼 때가 됐다'란 결심을 한 것이죠."
역시 대학로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박 배우는 깊은 내공을 지니고 있었네요. 그가 연기하는 사도세자를 꼭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바람도 가지게 됐습니다. 그는 '혈투'에서 헌명이란 역을 맡았습니다. 몰락한 양반의 자제로, 마음 깊숙이 신분 상승에 대한 높은 야망을 가진 인물이죠. 그는 자신의 캐릭터를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헌명은 피해의식이 많은 인물이죠. 욕망과 야망이 큰 친구입니다.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분들의 고마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피해의식이나 콤플렉스로 비뚤게 해석하죠. 이 때문에 그것을 뚫고 나가기 위한 방법도 좋은 쪽이 아닌 나쁜 쪽으로 하게 되고, 순수한 꿈과 희망이 아니라 욕망과 야망으로 변질시킵니다. 결국 큰 운명을 거스르는 일을 저지르죠."
한 마디로 그가 맡은 헌명은 '콤플렉스 덩어리'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었습니다. 사실 현재 우리들 주변, 아니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 자신도 자신만의 콤플렉스는 분명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콤플렉스라는 것을 이겨내고 떨쳐내는 것은 쉽지가 않죠. 그래서 고민도 많이 하게 되고요. 혹시 박 배우는 이런 경우 어떻게 대응을 하고 있을까요?
"콤플렉스는 저도 많이 가지고 있죠. 하지만 그것을 보는 관점이 중요한 것 같아요. 보는 이들한테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콤플렉스거든요. 그래서 자신에게는 콤플렉스겠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생각하고 그것을 장점화시키면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저 같은 경우는 목소리가 불만이 많았는데요. 영화판에서는 오히려 '개성 있다. 매력적이다'란 소리를 듣게 되더라고요. 아직도 제 스스로는 들을 때마다 '의외다'라고 생각하지만, 요새는 '장점이다. 강점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새봄 언 땅이 녹으며 새싹이 움트듯 줄줄 명답이 흘러나왔습니다. 멋져 보였습니다. 아니 멋졌습니다. 그래서 궁금해졌어요. 왜 그는 결혼을 하지 않을까.(안타깝게도 기자와 박 배우의 인터뷰는 박예진 씨와의 열애가 알려지기 전에 진행이 돼 여자친구의 존재가 불분명한 상태였습니다.)
"결혼이요. 이왕 늦어지니까 더 느긋해지는 것 같아요. 서른아홉 살의 12월 31일은 그렇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지구의 종말이 온 것 같더니, 마흔 넘으니까 또 아니더라고요. '아유, 이렇게 살아가는 거지 뭐' 하게 되던데요. 오히려 요즘에는 서른 초반처럼 철딱서니없게 다시 시작하고 있어요."
아마도 '서른 초반으로 돌아가 철딱서니가 없어졌다'는 박 배우의 말은 그의 가슴이 다시 뜨거워졌다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만큼 사랑에 대한 기운이 재충전이 됐다는 이야기겠지요. 그래서 그랬나 봅니다. 박 배우는 여러 번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물'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어요.
"가슴 떨리는 진한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극을 정말 하고 싶어요. 잘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제 이미지상 '의외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의외성에 있어서 잘 맞아떨어질 것 같지 않나요?(웃음) 널리 홍보해 주세요. 박희순도 멜로 된다고."(웃음)
안 그래도 정말 소문내주고 싶었는데 이제 그의 진짜 멜로극이 현실에서 시작되고 있죠. 알콩달콩하고 새콤달콤한 연애 잘하길 바라고 또 바라봅니다. 그나저나 충무로의 감독님들! 박 배우, 정말 멜로 잘 어울립니다. 연락 꼭 주세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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