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종욱의 박정희 이야기] (19)태어나서 자란 곳, 구미(상)

구미에는 인간 박정희의 소박한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는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상모동에 그가 태어나고 자란 옛집이 있다. 아주 조그만 초가인데, 요즈음 형편으로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해마다 50만 명에 이르는 관광객들이 몰려올 정도로 명소가 되었다. 또한 몸체 뒤안에 '새마을 펌프'라 불리는 재래식 물펌프가 있는데, 자못 흥미로운 사연이 깃들어 있다. 청와대의 주인으로 있을 때, 이따금 내려오면 보리밥을 물에 말아서 풋고추와 된장이 고작인 가난한 밥상을 좋아했다. 때로는 이웃의 촌로들을 불러서 막걸리를 곁들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우물물을 길어오라고 해서 우물이 있었던 자리에 설치한 펌프다. 그처럼 가난했던 시절의 허술한 밥상을 잊지 못하던 그였다. 그래서 내려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보리밥을 해서 소쿠리에 담아 삼베 보자기로 덮어 처마 끝에 매달아 놓곤 했었다. 하지만 그 같은 밥상을 비서관들이 나서서 말리면, "내 집에 왔으니 내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라"며 웃어 넘겼다.

어린 시절 기대어 쉬었던 소나무 두 그루가 남아 있다. 한 그루는 송정동 구미문화예술회관 마당에 있는 소나무다. 상모동에서 구미공립보통학교로 가는 중간쯤에 해당하는 자리인데, 학교에 오가면서 쉬어 가던 곳이었다. 다른 한 그루는 구미국가산업단지 내 옛 금성 흑백 TV 공장에 있는 소나무다. 이 나무는 수령이 270년쯤 되는데, 어린 시절 소를 매어 두고 책을 읽던 자리에 남아 있는 소나무다. 1974년 공장을 지을 때 나무를 베어내지 않고 보존한 덕에 오늘날 명물이 되었다. 그래서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은 딸 근혜와 함께 공장을 방문하면서 자신의 추억이 깃든 이 소나무를 돌아보았다. 그 같은 사연으로 2000년 경상북도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구미초등학교(옛 구미공립보통학교) 교정에 조그만 동상이 서 있다. 1991년 5월 3일 세워진 동상인데, 그를 기리는 마음으로 동문들이 뜻을 모아 세웠다. 그 옆에 자신이 쓴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글귀가 새겨진 돌이 세워져 있다. 또한 기념 식수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그뿐 아니라, 학교 기념관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친필이 보관되어 있다.

일선교(一善橋)라 불리는 교량에 휘호가 남아 있다. '일선교 준공기념 박정희'(一善橋 竣工記念 朴正熙)라 쓴 휘호인데, 1967년 3월 27일 준공식에 참석하여 남긴 것이다. 이 교량은 지역의 오랜 숙원이자 선산지역의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다리인데, 구미를 가로질러 흐르는 낙동강에 건설된 최초의 다리이기도 하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3년간의 공사 끝에 준공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실질적인 설립자라 할 수 있는 학교들이 있다. 금오공업고등학교와 금오공과대학인데, 기술 강국을 주창했던 그는 금오공업고등학교를 두 번이나 방문했었다. 그리고 기술 강국으로 가자면 꼭 필요한 정밀 기능사 양성을 위해 이들 학교와 같은 학교를 전국의 각 도에 하나씩 세우도록 지시하였다. 그와 함께 학교마다 '조국근대화의 기수'라는 휘호를 새긴 탑을 세우도록 하였다. 그러나 금오공과대학은 개교를 불과 몇 달 앞두고 일어난 '10'26 사태'로 갑자기 서거하는 바람에 이듬해인 1980년 3월에 개교하였다.

금오산 대혜폭포(大惠瀑布)는 우리나라 자연보호 운동의 발상지다. 1977년 9월 금오산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대혜폭포에 이르자 주변에 유리병이며 휴지 같은 게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곧장 "자, 우리 청소작업부터 하지" 하며 손수 바위틈과 숲속에 버려진 것들을 줍기 시작했다. 이어 같은 해 10월 범국민적으로 자연보호 운동에 나설 것을 제창하였다. 이듬해 2월에는 내무부에 전담 부서를 설치했고, 그해 10월 5일에 '자연보호헌장'을 제정, 선포했다. 그리하여 자연보호 운동이 전국으로 번져 나갔다.

대혜폭포는 금오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데, 27m 높이에서 시원스레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금오산을 진동시킨다. 그 옆으로 신라 말 고승 도선(道詵)이 참선하며 도를 깨우쳤다는 천연동굴인 도선굴이 있고, 그곳에서 바라보면 낙동강과 구미공업단지가 아스라이 펼쳐진다. 또한 아래쪽으로 야은(冶隱) 길재(吉再)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채미정(採薇亭)이 자리 잡고 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학창 시절 즐겨 찾던 곳이기도 하다.

그동안 추진되었던 박정희 대통령을 재조명하는 사업들이 지지부진하다. 김대중 대통령의 공약사업으로 시작됐던 기념관 건립사업은 10년이 넘도록 표류하고 있다. 또한 그 규모가 당초 건립 취지와 걸맞지 않게 축소된 데 대해 강한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정부의 계획과 상관없이 자체적으로 동상 건립과 생가 주변 공원화 사업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