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본 며느리들의 눈물…"슬프지만 다시 일어설겁니다"

아직도 상황 믿기지 않아…너무 겁나 TV도 못 켜

사진 17일 대구 남구 대명동의 한 교회에서 만난 일본인 며느리들. 고국의 참상과 고향에 있는 가족
사진 17일 대구 남구 대명동의 한 교회에서 만난 일본인 며느리들. 고국의 참상과 고향에 있는 가족'친구를 생각하며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제2차 세계대전 원자폭탄과 고베 대지진에도 꿋꿋하게 일어선 일본입니다. 모두 힘겨운 상황이겠지만 절망이 아닌 희망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17일 오후 대구 남구 대명동 세계여성평화포럼 회의실. 테이블 주위로 9명의 여성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손에는 '일본 대지진' 관련 기사가 가득한 신문이 쥐여 있었다. 긴 침묵을 깨고 한 여성이 "아직도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기분"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맞은편 다른 여성은 "사람들이 괜찮은지 궁금하지만 너무 겁이나 TV를 켤 수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옆사람이 어깨를 토닥이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줬다.

이들은 한국에 시집온 일본인 며느리들. 대지진과 지진해일로 큰 피해를 입은 고국을 걱정하며 모두 한동안 슬픔에 잠겼다. 여기저기서 한숨을 쉬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들은 일본이 다시 일어설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을 의심치 않았다.

1주일에 한 번씩 모임을 갖는다는 이들은 지난주 일본에서 대지진 참사가 있은 이후 하루가 멀다고 한자리에 모여 가족과 친구들을 걱정했다. 모임 회장을 맡고 있는 이토 루리코(49) 씨는 "가족과 멀리 떨어져 지내는 우리들이 의지할 곳은 이 모임뿐"이라며 "지진이 발생하자마자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연락하며 피해지역에 가족은 없는지 걱정을 나눴다"고 했다. 사카이 미키(38) 씨는 "쓰나미로 피해를 입은 미야기현에 외할머니가 살고 있다. 다행히 가족들에게 별탈은 없었지만 어린 시절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가슴 아프다"며 눈물을 흘렸다.

마츠우라 사토코(34) 씨는 "내 기억 속 일본 이미지는 '평화'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어요. 마을에서 종종 지진을 경험했는데 그 지진 때문에 심한 고통을 받는다는 걸 생각하니 슬퍼요"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일본에서 원자력발전소 관련 업체에서 일했다는 이시가와 유우조(42) 씨는 "안전한 원전 건설을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노력한 동료를 아직 기억한다. 그런데 자연재앙으로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고생한 동료가 슬퍼할 것을 생각하니 너무 힘들다"며 눈물을 흘렸다.

차분한 모습으로 질서를 지키며 재난에 대처하는 일본인의 자세가 언급되자 이들은 이내 기운을 내며"일본인의 긍지라면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며 손을 맞잡았다.

가시와바라 세츠(47) 씨는 "우리는 어릴 적부터 재난대비 교육을 받는데 항상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고 배운다"며 "남을 배려하는 모습이 길고 긴 피난길에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질서를 지키는 광경을 만들어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이들은 전세계에서 찬사를 쏟아내는 일본인의 질서정연한 모습에서 '희망'을 찾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케가미 마유미(49) 씨는 "원자폭탄과 고베 대지진의 피해 속에서도 경제강국, 질서정연한 나라를 이룩했다"며 "이번에도 세계 각지에서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주는 만큼 반드시 극복하리라 생각한다"고 주먹을 쥐었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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