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지진, 쓰나미, 원자로, 그리고…

일본 규슈 남쪽 어느 조그만 산기슭 마을 어귀에는 재미난 기념 동상(銅像)이 세워져 있다. 둥근 쟁반 모양의 구리판 위에 콩 모양의 구슬들을 담아 놓은 조형물이다. 마을 지도자가 지진을 미리 예측하기 위해 둥근 접시 위에 콩을 담아 놓고 콩이 흔들려 구르는 것을 보고 지진의 진동을 미리 예측, 주민들을 대피시켰다는 고사(故事)를 기념해 둔 관광 유물이다. 지진이 잦았던 일본 산골 마을의 지혜가 엿보이는 기념 동상이다.

수백 년 전부터 콩 담은 접시까지 연구해 냈을 만큼 일본의 지진 대비 시스템이나 훈련 교육은 전 세계에 소문나 있다. 그런 일본이 6년 전 한신 대지진에 이어 또 한 번 맥없이 무너졌다. 쓰나미에다 원자로 폭발까지 겹쳤다. 지진 문제만큼은 내로라할 정도로 큰소리쳐왔던 일본으로서는 할 말을 잃은 셈이다. 신(神)과 자연의 힘 앞에 첨단 계측기니 지진 교육 같은 인간의 지혜 따위는 쓰나미 물결 위에 뜬 지푸라기 같은 것임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작년 노벨과학상을 15번째로 받았을 때, 한국과는 15대 0이라고 우월함을 자랑해온 일본이었다. 그런 그들도 쓰나미는 막을 수 없었고 원자로가 망가져도 속수무책, 쩔쩔매야 했다.

원자로 폭발 직후 미국의 기술 지원을 거부하다 화를 키운 것도 어떻게 보면 열다섯 번의 노벨과학상 수상 국가라는 자만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자만은 10년 전부터 일본 젊은이들이 해외 유학을 기피하기 시작한 추세에서도 짚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文部科學省) 자료로는 2000년 이후 해외로 연구하러 나가는 교수, 학자가 10년 새 절반 이상 감소했고 해외 유학생 역시 한국과 중국 학생들의 유학은 매년 증가하는 데 비해 일본은 40%나 줄었다고 한다. '굳이 해외로 안 나가도 된다'는 분위기 때문이라고 알려졌지만 원자로가 터지고 나자 '우리는 쓰나미와 지진을 너무 몰랐다'고 고백했다. 원자로 공사가 부실했었다는 내부 폭로까지 나왔다. 조금씩 조금씩 누적돼 온 자만과 안일이 이번 재앙을 키웠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이웃 국가의 재앙을 놓고 함께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두 가지다. 신과 자연의 섭리와 힘 앞에는 노벨상이니 첨단 과학, 콩 접시 같은 인간의 지혜는 무력하기 짝이 없다는 상식의 재확인, 그리고 신이 탐탁잖게 여길 도전이나 자연의 순리를 깨는 감당 못 할 장난감은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소를 만든 것은 전기를 효율적으로 만들고 그 전기로 문명된 생활을 유지시키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번의 땅 울림에 전 세계인이 방사능 공포에 떨고 뒷감당에 허둥대는 얇은 지혜밖에 없으면서 왜 그런 위험한 장난감을 만들었느냐는 자성(自省)이 나올 때도 됐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과 삶의 질이 휘황찬란한 네온 불빛 세계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연은, 자연이 내려준 바람과 물과 태양의 힘으로 만족하라고 가르친다. 이것으로 모자라면 거기서 끝내고 그 다음은 촛불이라도 켜라는 것이 자연의 메시지라 봐야 한다. 그 선을 벗어난 영역은 신과 자연의 관할로 보자는 뜻이다. 노벨상 실력 따위로 그 영역을 넘거나 맘대로 건드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만이고 오만이다. 그런 오만과 자만이 이번 쓰나미와 원자로 폭발 같은 응징을 불러왔다.

이번 재앙에서 신과 자연의 힘을 다시 한 번 생각게 하는 이유는 또 있다. 후쿠시마 원자로 폭발로 벌벌 떨고들 있지만 실은 인간은 경미한 방사능은 견뎌낸다. 이유는 다 알 수 없되 견뎌낼 뿐 아니라 때로는 유익하기까지 하다. 신이 만든 창조물의 신비로움이다. 실제 30년 전 존스 홉킨스 대학 연구팀이 9년에 걸쳐 8개 핵잠수함 기지 조선소 근로자 2만 7천여 명과 일반 조선소 근로자 3만 2천여 명을 대비 조사한 결과 핵 기지 근로자가 각종 암이나 순환기, 호흡기계 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24%나 더 낮은 것으로도 조사됐다. 옥스퍼드 의대 팀도 82년간 방사선과 전문 의사 2천698명을 조사한 결과 28%나 더 낮게 나타났다. 적은 양의 방사선 같은 외부 자극은 인체 면역 체계를 활성화시키고 DNA 수리(修理) 효소 분비가 향상돼 기존에 입은 손상까지 치유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게 바로 신의 능력이다. 그래서 이번 지진, 쓰나미, 원자로 폭발에서 괘념해야 할 것은 요란한 뉴스 잔치가 아니라 신에 대한 경외감 그리고 자만심의 경계, 미약한 인간으로서의 겸허함이어야 한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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