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십원' 동전에 관한 단상

최근 어느 학교 행사에 초대돼 갔다가 볼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복도 위에 십원짜리 동전 한 개가 떨어져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며, 눈에 잘 띄는 위치에 동전이 있었지만 아무도 줍는 사람이 없었다. 그 순간, 요즘처럼 높은 물가 시대에 비록 '십원'의 화폐 단위는 존재하고 있지만 그 가치와 쓰임 정도는 아주 미약해서 그냥 무시하고 지나쳐 버리는 것일까. 아니면 십원을 줍기 위해 일시적으로 허리를 구부려야 하는 노동의 대가성이 빈약해서 포기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십원짜리 동전이 발밑에 나뒹굴어도 사람들이 외면하는 모습 앞에서 문득 나는 과거 어렸던 코흘리개 시절의 추억들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의 유년 시절은 1960년대 초기 자유당 정권이 퇴진하고 국가 경제 기반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 산업화가 한창 전개되던 때였다. 그 당시에만 해도 십원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살아가던 무렵, 도회지에서 오신 먼 친척분이 용돈하라며 나에게 건네주신 십원을 만지작거리며 몇날 동안 가슴 부푼 날이 있었다. 그 십원을 가지고 사람들이 붐비는 장터로 달려가 나무젓가락 꼬챙이에 조청을 고아 만든 왕방울만한 크기의 월남사탕과 냄비 우동 등을 사먹고도 몇 원이 남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세월이 훌쩍 지난 오늘날 십원 동전의 가치는 한낱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을 만큼 초라하게 퇴색해 버렸으니 사뭇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실제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십원이 잘 통용되는 곳도 없다. 그저 할인마트에서 행사의 저렴함을 표시하기 위해 천원 단위에서 몇 십원을 뺀 금액을 제시하거나, 세금을 낼 때 끝자리에 붙는 단위로 매김할 정도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십원짜리의 쓰임은 점점 위축되거나, 아예 돼지 저금통 속에 넣은 후 모아서 나중에 다른 화폐로 교환해 쓰려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것은 현재 화폐 단위 명맥은 여전히 존재하는 데 비하여 정작 십원 동전의 사용은 줄어들거나, 저금통 속에서 잠자고 있으므로 한국은행은 그만큼의 감소하는 동전을 계속 발행해야 하는 상황을 빚게 한다. 이는 결국 국가적 재원을 쓸데없이 낭비하는 것이 된다.

주화 발행의 측면에서 십원짜리 동전을 한 개 만들기 위해서 소요되는 금액이 대략 삼십원 정도라고 한다. 동전의 소재로 쓰이는 금속의 시세가 동전의 액면 금액과 똑같아지는 시점인 멜팅포인트(Melting Point)를 이미 훨씬 초과한 셈이다. 비록 요즘 새로 나온 십원짜리 동전은 크기를 최소화하고, 과거의 구리성분 함유량을 표면에 덧칠할 정도로 만들어 단가를 낮추었다고 하지만 기존의 옛 동전을 거래 통화량만큼 회수하여 사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생활 주변에서 과거 십원짜리 옛 동전을 회수하는 방법으로 첫째, 대량의 수효만큼 동전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그것에 상응하는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좋을 듯하다. 둘째, 잠자고 있는 동전을 돼지 저금통에 영원히 머물게 할 것이 아니라 금액만큼의 돈을 교통카드나 휴대전화 사용 금액으로 대신하여 충전해주는 장치도 모색해 볼 수 있다.

옛말에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한 걸음씩 올라야 한다고 했다. 이 세상에서 남부러울 것이 없는 백만장자라 할지라도 그 자산의 출발은 아주 적은 액수의 돈이 모여 이룰 수 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것으로 보면 십원의 동전은 더 이상 길가에 버려져 그냥 간과해버리는 화폐 단위가 아니라 내일의 부유한 삶을 도래케 하는 희망의 아이콘이 아닐까.

누구나 한번쯤 길가에 떨어진 십원짜리 동전을 본다면 처음 시작했을 때, 힘들었을 때, 포기하고 싶었을 때처럼 인생에서 고비고비를 한번쯤 기억해 보자. 그렇다면 그 순간은 10원의 가치를 훌쩍 뛰어넘는 때가 될 것이다.

김국현(올브랜 아울렛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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