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廣西師範大學出版社, 2005)
한때 아시아 4룡 가운데 으뜸자리를 차지했던 대만이 대륙 중국의 부활로 세인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우리와의 관계도 애꿎게 되었습니다. 1992년 중국과의 수교 때문에 대만과는 일방적으로 단교한 꼴이 된 것입니다. 그로 인해 냉전 이후 최대의 맹방을 하루아침에 '남'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그때의 서운함을 극복하고 관계를 원상회복하고 있는 중입니다. 1999년 대만에서 발생한 대지진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우리 정부가 파견한 구조대원과 구조견의 활동이 그들을 감동시킨 것입니다.
친펑이 편집한 '세월대만 1900-2000'을 보면 대만도 우리만큼이나 거친 풍상을 겪었습니다. 청일전쟁의 패전으로 일본에 할양되었다가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후 다시 중국의 품에 돌아왔지만 또다시 분쟁의 중심지가 되어야 했습니다. 1949년 국민당이 대만으로 후퇴함으로써 대만은 국민당의 대륙수복을 위한 전초기지가 되어야 했고, 거대한 중국 대륙을 상대하면서 뼈를 깎는 시련을 치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대만은 어려움 속에서 가장 강하고 발전된 보도(寶島)로 탈바꿈했지만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형극의 여정이었습니다.
책은 짧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던 대만의 역사과정을 사진자료를 첨부해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본식민시기(1945년 이전), 대만광복(45년), 좌익사조의 흥기(46년), 국민당의 대만장악(49년), 금문도 포격사건(58년), 동서관통철도 개통(60년), 미스중국선발대회(60년), 9년 의무교육제 실시(68년), 장개석 사망(75년), 대가락(大家樂) 도박풍조(87년), 장경국 사망(88년), 마잉주와 천수이벤 대결(98년), 상하이행 열기(2000년)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대만은 현재 대외적으로는 외교 역량이 축소되어 국가로서의 존립자체도 위태로운 것 같아 보이지만 아직은 건재한 국가입니다. 여전히 경제부국이고 기술강국입니다. 대륙 중국과 대만 간의 관계는 그들의 내부문제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대만은 영원한 이웃입니다. 서로 마음을 나누고 이익을 나누고 함께 발전을 도모하면서 공생공영하면 될 것입니다.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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