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1980년대 초 '사막의 라이언'이란 영화가 있었다. 이탈리아의 식민 지배에 맞서 독립 투쟁을 벌였던 리비아 유목민들의 지도자 오마르 무크타르의 이야기다.
주연 배우 앤서니 퀸(무크타르 역)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도 돋보였지만, 서구 제국주의의 야만성을 폭로한 영화여서 당시로서는 의외였다. '사막의 라이언'이 한국에 상륙할 수 있었던 것은 카다피가 대수로공사 수주를 승인하면서 붙인 조건이었다고 한다.
무크타르를 사표로 삼았던 카다피는 자신 또한 사막의 라이언이 되고 싶었고, 이 영화의 제작비도 그가 제공했다. 다국적군의 폭격을 두고 언필칭 제국주의의 침략이라 비난하며 마지막까지 싸우다 죽겠다는 엄포도 자신을 무크타르와 동일시하려는 속내가 깔려 있는 듯하다.
하지만 무크타르는 동족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지 않았을뿐더러 적군 병사들의 생명까지 아꼈다. 파시즘 정권보다 더 잔혹한 방법으로 자국민을 학살하고 있는 카다피는 '사막의 라이언'은커녕 '사막의 미친 개'로 전락하고 있을 따름이다.
'피바다'는 북한이 최고로 손꼽는 혁명 가극이다. 김일성의 주체적 문예사상을 온전히 드러냈다고 자랑하는 가극 '피바다'의 원래 제목은 '혈해'(血海)로 1936년 만주 항일 투쟁 당시 만들었다고 한다. 일제와 지주에 맞서 싸우다 학살당한 주인공의 아내가 자식들을 혁명 투사로 키운다는 내용으로 북한이 외국 손님들에게 선보이는 단골 메뉴이다.
그런데 북한 정권은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투쟁 경력을 소리 높여 찬양하면서 정작 일본 제국주의를 닮아가고 있다. 신격화한 세습 천황제도에 군국주의 체제로 지탱했던 일본 제국주의와 김일성-김정일 체제가 다를 게 무엇인가.
카다피와 김일성-김정일은 닮은 점이 많다. 장기 독재의 기록에서도 백중지세요 테러 지원국의 악명에서도 난형난제다. 카다피는 전투기까지 동원해 자국민을 무차별 학살하고 있다. 수백만의 인민이 굶주리고 있지만 김정일 정권은 권력 세습과 기득권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닮은 그들, 최후의 순간 또한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가오고 있는가.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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