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있는 한 영원한 현역이자 무대는 곧 나의 삶입니다."
예명 '태우'로 50년 가까이 노래와 더불어 살았고 지금도 고정적으로 무대에 오르는 권태우(66) 씨.
다음 달 초 (사)대한가수협회 대구지회장에 취임하는 그의 노래인생은 지난 반세기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노래를 할 수 있어 행복하고 무대에 오르면 잡생각이 사라집니다. 저의 노래를 들을 단 한 사람의 관객만 있어도 언제든 무대에 오를 작정입니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펑키풍의 헤어스타일에 귀고리까지 착용한 그의 직장은 대구시 수성구 두산동 수성못 옆 유흥업소 밀집지역에 있는'올드 팝스'. 대구 전체를 통틀어 현재 7080노래만을 전문으로 하는 보컬그룹이 2팀뿐인 가운데 그는 이곳에서 여성 가수, 드러머와 함께 매일 오후 7시 30분부터 40분짜리 무대를 4, 5번 소화하고 있다.
"한 달 전까지 '태우와 젊은 영웅'이란 보컬그룹으로 일했지만 해체됐고 조만간 다시 팀을 구성하려고 합니다."
대구 토박이로 고교 때부터 미8군 무대에서 팝송을 불렀던 그는 1968년 군 제대 후 지인의 소개로 서울 무교동 일대 나이트클럽에서 주로 팝송, 라틴음악, 재즈 등을 부르며 가수의 길을 걸었다.
"당시 한 달 하숙비가 1만5천원 정도였는데 일당이 1천원이었으니 꽤 괜찮은 수입이었죠."
그때 함께 무대에 섰던 가수 중에는 조경수, 최헌, 김정수 등이 있다. 권 씨는 이들과 같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나름대로 실력을 인정받던 중 기회가 왔다. 당시 보컬그룹 '키브라더스'의 리더싱어 윤항기 씨가 솔로로 데뷔하면서 그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
"아마 그 시절이 제 평생 최고의 시기였어요. 나이트클럽에서의 인기도 인기려니와 라디오방송 등 출연제의가 많았어요. 그 덕에 유명 작곡가와 연예계 사람들도 많이 알게 됐습니다. 나훈아 씨, 조용필 씨를 비롯해 '빙글빙글' '인연' 등을 작곡한 김명곤 씨의 곡을 받기도 했으니까요."
'조용필과 그림자' '히 식스' '김훈과 트리퍼스' 등 유명 보컬그룹과 경쟁하던 키브라더스에서 '망설임' '몽금포 타령'을 고고리듬으로 편곡해 취입하기도 했던 권 씨는 지금까지 앨범 5장을 냈다. 그중 '그댄 눈물이 없나요'는 그의 대표곡이다.
이러던 중 1980년대 초 고향 대구에서 동성로 '해바라기' 음악 감상실에서 일을 해달라는 러브콜이 왔다. 그는 그냥 잠시 쉴 겸 고향에 온다는 게 그만 계속 머물며 활동하게 됐다.
"약 3년간 '해바라기'에서 일하다가 저의 가창력을 인정한 회관 업주대표가 뭉칫돈을 건네며 스카우트를 하기에 '우와 다섯'이란 보컬그룹을 결성해 본격적인 회관무대에 서게 됐습니다."
1980년대 초 대구는'회관문화'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권 씨는 당시 대구시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성인유흥업소였던 부광회관에서'가요 메들리'를 우리 나라에서 처음 불러 큰 인기를 누렸다. 한때 인기를 누렸던 '삼태기 메들리'도 강병철이 대구에 와 권 씨의 공연을 보고 힌트를 얻은 것이다. 다시 보컬그룹 이름을 '태우와 이상한 동네'로 바꾼 그는 파격적으로 무대와 관객사이를 좁혀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음악을 시도했다.
대구에 왔던 나훈아 씨가 그와 그의 팀을 서울에서 활동하도록 제의할 정도였다. "그 시절 회관과 함께 뉴욕나이트클럽, 한일'동인호텔 나이트클럽 등 대구는 대중문화의 전성기여서 돈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벌었죠. 조용필 씨가 대구공연을 올 때면 저의 보컬그룹이 반주를 맡아 했으니까요."
권 씨는 칠성시장 인근에서 '국빈관'이란 회관을 직접 경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수는 노래만 불러야 했던가. 그는 이 사업에서 번 돈을 몽땅 털어먹었다. 자연히 자신의 앨범을 홍보할 기회마저 놓쳐버렸다.
뛰어난 가창력과 '가요메들리'라는 새 장르를 개척했던 그는 이제 덤덤하게 가수의 길만을 걸을 생각이다.
"앞으로 대한가수협회 대구지회장으로서 지회 행사와 봉사활동에도 힘쓸 예정입니다. 갈수록 노래를 부를 무대가 줄어듭니다. 노래할 수 있는 무대를 많이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일주일간 팝송만 중복 없이 부를 수 있다는 권 씨는 음악 하는 후배 가수들에게는 늘'옳은 프로가 되라'고 조언한다. '가수는 가수의 값을 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 업주와 관객을 즐겁게하는 가수가 옳은 가수'라는 것이다.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노래를 부른다고 했을 때 의사였던 부친은 그를 호적에서 빼려했다. 50년 동안 노래를 불러온 권태우 씨는"가수로서 제 인생에 한 점의 후회도 없다"고 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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