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평론가 권원순 씨는 자신이 대구시로부터 소위 '빨간 딱지'가 붙었다고 말한다. '바른말 잘하고 고집 있어 공무원과 일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것. 권 씨는 "대구시가 모든 문화 정책의 시나리오를 짜놓고 들러리로 자문위원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만들고 있어 문화계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고 일침을 가한다. 그는 대구시가 '예스맨'을 불러 들러리를 세우는 방식으로 정책을 진행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의 발상이 현실화되도록 행정력을 뒷받침해주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구가 놓친 자원, 미술
그는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대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나라 서양화 역사의 출발은 1915년인데 대구는 1920년입니다. 그것도 이상정 장군이 일본에서 바로 들여왔으니, 한국 근대 미술의 역사와 거의 맥을 같이하고 있죠."
대구는 근대 미술사뿐만 아니라 1978년 한국현대미술제를 개최해 명실공히 현대미술의 역사도 새로 썼다. 현재 전국 미술대학은 11개. 서울 6개, 대구 4개, 광주에 1개가 있다. 이처럼 대구는 미술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다 미술 인재의 30% 이상을 배출해내고 있음에도 지금까지 이렇다 할 미술 인프라가 없다. 광주가 광주미술비엔날레를 개최하고 전국 10여 개 도시가 시립미술관을 세울 때까지 대구는 두 손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
"풍부한 미술 자원을 현실화시키지 못한 것은 대구시와 미술인들의 책임이에요. 앞으로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죠."
그는 제대로 된 국제 미술교류전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중국 칭다오, 대만의 대중시, 일본 센다이 등과 국제 교류를 하고 있지만 작품의 수준은 우리보다 낮다는 것. "문화 수준이 더 낮은 도시들과 교류는 의미가 없어요. 잡다한 교류전을 없애고 주제가 뚜렷한 전시 기획으로 방향을 잡아야죠."
◆대구미술관과 이우환미술관
대구에 들어서게 될 이우환미술관에 대해 권 씨는 "이우환은 백남준과 함께 세계를 대표할 만한 작가인 만큼 대가의 미술관이 대구에 들어서는 것은 반길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려할 만한 점도 있다. 대구시의 논리는 "일본에 있는 이우환미술관은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이고 부산에서도 미술관 추진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는 것. 하지만 그는 냉철하게 보면 일본 나오시마는 이우환미술관뿐만 아니라 연계된 볼거리가 풍부하다는 점에서 대구와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대구미술관 개관도 눈앞에 앞두고 있는 만큼 두 미술관의 미술품 구입비 등 중장기 예산 편성을 대구시민에게 공개해야 시민들에게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대구시의 적자 요인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우려다. 개관을 앞둔 대구미술관은 내용이 중요한 만큼 내실 있게 운영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진정한 관광자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미술을 비롯한 예술 전반에 대한 '아카이브'를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작고 작가와 화가, 음악가 등의 유품이 바로 관광자원이 된다.
◆미술작가들도 공부해야
권 씨는 작가들에게 '이제 솔거 시대는 지났다'고 자주 말하곤 한다. "창작을 하기 위해서 창작 의욕과 작품 구상, 내면적 전개 등 작품을 외적으로 완성하기 이전 단계가 창작의 90%가 돼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작가들은 거꾸로 돼 있어서 '그리는 작업'을 예술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작품 그리기에만 몰두하고 있죠."
권 씨는 "작가들도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대가 원하는 작품을 보여주려면 그만큼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것. "얼마나 현대적이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느냐가 중요한데, 작가들은 아직도 지역 연고주의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한다. 공부와 연구를 계속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로 예술가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
한편 미술 애호가를 늘리기 위해선 심도 있는 시민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술품 생산자와 화랑, 비평계, 소비자까지 선순환구조를 강화하기 위해선 교육이 튼튼하게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구는 산업으로 일어서기는 힘든 만큼 앞으로 살 길은 교육과 문화밖에 없습니다. 이 점을 모두 명심해야 합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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