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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사] "'다정한 대구' 회복에 힘 보태고 싶어"…박장규 전쟁기념관장

우리나라 3대 박물관에는 국립중앙박물관, 독립기념관과 함께 전쟁기념관이 꼽힌다. 전쟁기념관의 경우 지난해부터 관람료를 없애면서 전국 각지에서 관람객이 몰리고 있다. 최근 찾은 전쟁기념관에서 왠지 무겁고 어두울 것이라는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전시회에는 아이의 손을 잡은 가족, 휴가 나온 군인들, 연인들이 줄을 서 입장하고 있었다. 전쟁 관련 쇼핑몰에선 외국인 관광객이 자신들의 눈에는 신기한 물건들을 만지작거렸고, 기념관 한쪽엔 역사적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한 '박물관대학 2기생'을 모집한다는 포스터 앞으로 어르신들이 줄을 서 있었다. 이런 변화는 박장규(63) 전쟁기념사업회장이자 전쟁기념관장이 몰고 온 것이라는 게 직원들의 설명이었다.

"잊혀져 가는 우리 역사를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교육팀을 만들고 교육 기능을 확대했습니다. 어린이, 청소년에서부터 어른들까지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20개로 늘리고 저명인사를 초빙해 강의하는 '박물관대학'을 운영하게 됐지요. 우리의 안보, 동맹, 전쟁, 동남아 관계, 역사, 전쟁사, 전통문화 수난사를 절대 잊지 말자 하면서요."

박 관장은 자신의 어릴 적 얘기를 꽤 길게 했다. 듣기에는 참 슬픈데 정작 자신은 자꾸 웃었다. 아흔일곱의 어머니가 아직 대구에 계신다며 언젠가는 고향 땅에서 작은 힘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을 업고 대명동에서 팔조령을 넘어 청도까지 행상을 다닌 어머니, 항상 많이 아프셨던 아버지, 양젖을 짜던 형님,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3까지 했던 매일신문 배달. 짖고 달려드는 개가 무서워 신문으로 후치던('쫓던'의 방언) 아찔했던 경험, 소문난 콩국집을 지날 때 돈이 없어 코를 잡고 뛰던 일까지.

"하루는 신문배달 월급을 받아 그 콩국집에 갔어요. 친구에게 국수 한 그릇을 사주고는 우리 집에 데려갔지요. 그 친구, 우리 집을 보고 나서 그러더군요. '내가 큰 빚을 졌다'. 그 뒤로 그 친구는 밥이고 술이고 제가 사는 꼴을 못 봐요. 저에게는 그런 친구들이 아주 많습니다. 허허."

시(市) 장학생으로 고등학교를 다닌 박 관장은 육사에 입학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공짜로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승승장구했다. 육사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생도대장을 지냈고, 3사관학교장(소장)으로 2005년 예편했다. 전쟁기념관장에 공모하고 나서 이명박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선 "460억원만 달라. 전쟁기념관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건의하기도 했다. 2015년이면 전 세계 최고의 기념관으로 발돋움시킬 자신이 있다고 했다. 천안함 이양도 시도할 생각이다.

박 관장은 엄청난 독서광이자 클래식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천체물리학과 기독교 신학서적을 탐독하고 있는데 독서의 이유를 물으니 "궁금한 것은 다 책에 답이 있기 때문"이라 했다. 가난때문에 제대로 하지 못한 공부 욕심이 예순을 넘은 그에게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고 3때 친구 집에서 '볼레로'를 듣고 '천사가 춤을 추는 것 같다'고 느끼고선 클래식에 빠졌다. 바흐의 마태수난곡, 또 누구의 몇 번, 누구의 무엇 등을 들어보라고 추천했는데 기자는 다 알아듣지도 받아적지도 못했다. 박 관장은 지난해 서울은혜교회 합창단 지휘자로 나서 크리스마스 성가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책은 습관이다. 책을 곁에 두는 것을 습관화하면 읽게 되고, 읽게 되면 자꾸 읽게 된다"고 했다.

'상식과 정도(正道)'가 삶의 신조라는 박 관장은 국가안보 교육의 장인 전쟁기념관장에서 조용히 물러날 것을 계획하고 있다. 연임할 수 있지만 후배들에게 길을 터줘 아름답게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가 살고 계신 대구로 와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텃밭을 일구며 고향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고도 했다. 푸근한 정과 인간적인 신뢰, 의리가 숨쉬는 '다정한 대구'라는 본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싶은 게 꿈이다.

박 관장의 형은 박근규 전 한국의류협회장이며 동생은 박한규 전 대구 중구 부구청장이다. 박 관장은 남산초교, 심인중, 경북고를 나왔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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