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18일 전 구제역 바이러스, 어디서 왔나

파주와 염기서열 유사 베트남과는 종류 달라

지난해 11월 29일 안동에서 처음 발생한 구제역이 3개월여 만인 26일 종료 국면을 맞았으나 바이러스 진앙지와 전파경로 등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동안 살처분'매몰된 가축 수는 347만3천여 마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국내에서 사육되고 있는 돼지(990만여 마리)의 33%인 331만2천여 마리, 전체 소(337만여 마리)의 4%인 15만1천여 마리 등이 매몰됐다. 구제역으로 인한 직접 피해는 3조원대를 넘어섰다. 환경오염, 식품가격 급등과 같은 2차 피해도 유발했다. 매몰지 반경 300m 안에 있는 지하수 관정은 1만 곳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전국 4천172개 매몰지 주변은 침출수 유출에 따른 악취, 식수 오염 등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24일 구제역 사태가 '사실상 종료 국면'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아직도 구제역 바이러스 유입 경로와 진원지 등 근본적 역학조사를 둘러싸고 정부와 학계,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결과에 따라 책임 추궁 등 적잖은 후폭풍이 불어닥칠 것으로 보인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어디서 왔나?

구제역 역학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진원지이다. 구제역 바이러스가 어디서 유입됐으며 유입 경로가 어떤지에 대한 명확한 파악이 방역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를 둘러싸고 적잖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과 일부 정치권에서는 안동 구제역 바이러스는 외국에서 유입된 것이 아니라 국내에 상존해 있던 바이러스가 재발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1998년 미얀마에서 최초로 보고된 'O'형 바이러스와 같은 유형이라는 이유만으로 베트남 유입설을 기정사실화해 '베트남 여행 축산농'과 '안동 진원지'라는 누명을 씌웠다.

이춘석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안동 구제역 바이러스가 러시아'홍콩 등에서 유입된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국립수의과학연구소로부터 받은 4개 VP1 서열을 분석한 결과 2010년 초 이미 추출된 (경기 강화) 바이러스와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또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재단 등 단체들도 "정부가 지난해 11월 28일 안동 와룡에서 수집해 식량농업기구(FAO) 및 국제수역사무국(OIE) 산하 구제역세계표준연구소(WRLFMD)에 의뢰한 구제역 바이러스 유전자 분석결과 이미 지난해 4월 충청과 경기 강화에서 발생했던 바이러스와 가장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구제역이 퍼진 경로는?

정부는 1월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가 경기 파주, 연천 등과 염기서열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안동'을 진원지로 발표했다. 안동 농장을 드나들었던 분뇨차량이 경기지역으로 확산시켰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논란에 휩싸인 파주시는 자체 역학조사 결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지목한 파주지역 축분처리업체가 안동 농장에 다녀온 사실은 있으나 파주지역 축산농가를 방문한 적이 없어 파주 구제역 발생지와는 역학적 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경선 연구원은 "구제역 사태가 지금처럼 엄청난 대재앙으로 확산된 것은 정부가 안동에서 구제역이 발생했을 초기부터 아무런 근거 없이 '베트남 바이러스' '축산농들의 베트남 여행에 의한 유입 추정' 등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세계농업기구 염기서열 계통도에는 지난해 11월 발생한 안동 바이러스와 국내에서 상반기 발생했던 경기 연천'파주'양주 바이러스와 유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안동 바이러스는 베트남 바이러스와 같지 않아 베트남에서 유입되지 않았으며 2010년 홍콩, 경기도 강화, 충청지역 바이러스 등 과거에 발생했던 바이러스와 유사하다는 것.

◆정부는 왜 베트남을 고집할까?

이 같은 정치권과 전문가 집단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전히 베트남 바이러스 유입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17일 농식품부와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국내 발생 구제역 바이러스가 지난해 베트남에서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와 유사하다고 밝혀 당초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는 "정부의 초기 역학조사 오류와 섣부른 판단으로 지금의 구제역 대재앙이 빚어졌다. 정부는 지금의 사태에 대한 책임자를 처벌하고 국민의 건강에 대한 정보 독점화를 없애야 한다"고 밝혔다.

전국적 구제역 대재앙이 전문가와 정치권 주장대로 지난해 초 경기와 충청 지역에서 발생했던 바이러스로 판명될 경우 엄청난 후폭풍에 내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결론은 우리나라가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구제역 바이러스 상존 국가로 전락하면서 그동안 축산 청정국 지위 유지를 위해 펴온 살처분 정책을 비롯한 정부의 축산정책 전반이 불신의 늪으로 빠져들고 이에 따른 책임자 처벌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김경선 연구원은 "세계농업기구가 11월 말 한국 정부에서 보낸 구제역 바이러스의 한 샘플을 분석한 결과 계통도상 러시아와 홍콩 등지 바이러스와 가장 유사한데도 2월 또다시 5개의 바이러스 샘플을 보내 계통도상 러시아와 홍콩 등이 후순위로 빠지도록 하는 등 분석 자료를 임의로 조작하려 한 흔적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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