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루판은 톈산(天山)산맥을 끼고 톈산 북로와 남로가 갈라지는 실크로드의 분기점에 놓여있다. 그래서 이 지역은 문명교류의 십자로에 위치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 두 루트를 통해 들어온 서역 이민족 문화와 서쪽으로 뻗어가려는 중국문화가 서로 만나 마찰을 일으켜 온 곳이다. 그러고 나서야 점진적으로 융화되는 지리적 숙명을 가진 땅이었다.
멀고먼 사막 길을 달려 투루판에 가까워지면 갑자기 차창 밖의 색상은 푸르게 변한다. 하늘로 쭉쭉 뻗은 가로수들이 도열하듯 서있는 포장도로가 한없이 직선으로 이어진다. 하루 종일 누런 황토 벌판의 경치만을 바라보며 달리다가 키 큰 포플러 나무들이 나란히 서서 사막 하늘의 태양을 가려주고 있으니 이상한 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포플러는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많은 나무종류 중의 하나라는데 투루판에서는 성장이 빠르고 식생이 쉬운 이태리 포플러를 선택한 것 같다. 이 나무는 건포도 제조를 위한 흙벽돌집 지붕의 대들보와 건조대 목재로도 유용하게 쓰인다. 키가 크고 미끈하며 성질이 부드러워 여성을 상징하는 이 나무를 이곳 사람들은 많이 심었다. 강한 햇볕과 거친 바람이 부는 사막을 좀 여성적인 땅으로 바꾸어 줄 것으로 믿었을까.
투루판은 중국에서 가장 질 좋은 포도 생산지로 이름 높다. 어디든 먼지를 뒤집어 쓴 포도덩굴이 연결된 포도밭이고, 햇볕과 바람을 이용해 건포도를 만들기 위한 흙벽돌집이다. 거리에도 전깃줄 같은 줄이 쳐져 있는데 포도덩굴을 올리고 따가운 빛도 가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곳의 기후 조건은 포도 생육에 적합한 요소, 즉 고온 건조하고 낮이 길며 일 년 중 맑은 날이 300일이 넘는다고 한다. 물도 충분히 공급된다.
가이드의 안내로 포도 농가 한곳을 방문했다. 포도덩굴 터널을 지나자 넓은 마당이 나왔다. 마당 한 쪽의 평상에 오르니 먼저 몇 가지 건포도와 이 지방의 또 다른 특산물인 수박이 나왔다. 음악이 흘러나오며 위구르 소녀의 춤이 시작되었다. 푸른색 바탕에 붉은 꽃무늬 복장을 한 위구르 소녀의 전통춤은 잠시 서역의 분위기에 빠지게 했다. 미스포도 소녀일까, 그녀는 마당을 서너 번 왔다 갔다 하고 몸을 몇 번 빙빙 돌리며 우아하면서도 약간은 관능적인 춤사위를 보였다. 호무(胡舞)란 이런 춤을 말하는 것일까. 바로 맞은편에 여러 종류의 건포도를 상자에 가득 담아 두 줄로 늘어놓고 판매하였다. 주인은 전혀 농약이 들어가지 않은 투루판의 건포도는 세계에서 제일 달고 맛좋다며 자랑했다. 예쁜 위구르 소녀의 멋진 민속춤과 대접받은 포도에 사례도 할 겸, 알갱이 작은 것 두 봉지와 검은 포도, 초록 포도 등 3가지를 푸짐하게 샀다. 포도는 카스피해 연안에서 시작되어 중앙아시아로 퍼지고 중국까지 전해졌으며, 우리나라는 고려 때 이곳 투루판에서 들여왔다고 한다.
포도 재배에 필수적인 뜨거운 햇빛은 충분하지만 물은 어떻게 얻을까. 투루판에는 수천 년에 걸쳐 위구르인들의 지혜와 노력으로 건설해 놓은 독특한 시설이 있다. 페르시아어로 '카레즈'라 부르는 이 시설은 수원(水源)으로부터 물을 끌어 들이기 위한 특수한 구조의 지하수로(水路)를 가리킨다. 카레즈박물관을 둘러보기로 했다. 낮은 입구는 큰메기 한 마리가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한데 그곳으로 관람객들이 술술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러한 건축 설계는 비가 내리지 않는 사막에서나 가능하다. 입구에는 카레즈 시설의 모형과 도구 및 건설 공사에 사용했던 유물들을 전시해 놓았다. 종횡 약 2m 남짓한 땅굴을 따라 걸었는데, 보도 옆으로는 시퍼런 물이 콸콸 흐르는 도랑이 나 있다. 좁아지는 굴속을 더 들어가면 땅 위에서 수직으로 구멍을 뚫고 내려와 그 지하 물길과 만나는 곳이 우물이었다. 이러한 곳을 여러 개 수로로 연결시켜 놓았는데, 이것이 카레즈이며 30, 40㎞나 멀리 있는 톈산산맥의 눈 녹은 물이 투루판까지 흘러오게 한 장치이다.
태양 에너지가 풍부한 사막에 물을 공급하는 시설은 앞으로 갈수록 더욱 관심이 많아질 것이다. 카레즈 한 개를 만드는 데는 일정한 간격의 수직 우물을 수십 개나 파 내려가 이들을 서로 연결시켜 수로를 만드는 고되고 험난한 작업이 따라야 한다. 투루판에는 이렇게 만들어진 크고 작은 갈래의 카레즈가 천여 개나 있으며 이들의 길이를 모두 합하면 3천㎞나 된다. 한 갈래의 카레즈를 파는데 4, 5명이 6개월~5년이나 걸린다고 하니 카레즈야말로 투루판의 대역사이며 서역인들의 지혜와 노력, 희생의 결정체다. 초목이 무성한 오아시스 투루판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수리 시스템이다. 투루판 사람을 먹여 살리는 생명의 젖줄인 카레즈가 존재하는 한 실크로드의 포플러 가로수는 더욱 푸르고 곧게 뻗어나갈 것이다.
글: 안병한 (원화중 교사)
사진: 박순국 (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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