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공정한 사회의 진정한 의미

필자가 뉴욕의 한 시립병원에서 임상사회복지사로 일할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동료 미국인 사회복지사 가족과 함께 플로리다로 여름휴가를 떠난 적이 있다. 여행 첫날 밤 동료 사회복지사가 아들을 재우러 들어간 후 한참이 지나서 나오기에 아이 곁에서 잠이 들었었냐고 물었더니 잠자리 동화(bedtime story)를 들려주다 늦었다고 대답했다.

머리맡 이야기라는 것이 아이가 편안한 마음으로 잠이 들 수 있도록 부모가 해주는 동화의 모습을 빌려 실제적으로는 그 사회의 가치와 도덕을 자연스럽게 내재화시키는 사회화의 기능을 하고 있음이 생각나 무슨 이야기를 해주었느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자신의 부모님이 즐겨 들려주던 '빨간 병아리 이야기'(Little Red Hen Story)라고 대답했다. 이 동화의 줄거리는 빵을 먹고 싶은 붉은 병아리가 동물농장의 동물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모두가 거절하자 혼자서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밀을 타작하고, 밀가루를 만들어 맛있는 빵을 만든 후 이 빵을 친구들과 나누어 먹을 것인지 아니면 혼자 먹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한다는 이야기이다. 미국의 부모들은 자신의 노력의 결실로 만든 빵을 게으른 친구들과 나누지 않고 혼자 먹어도 도덕적으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음을 생활 속에서 자녀들에게 가르친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노력의 대가로서의 보상에 도덕적 정당함이 있음을 자연스럽게 심어주고 있다.

사회주의적 이념에 근거하여 개인적 욕구의 결핍이나 노력의 정도에 관계없이 주어지는 수량적 평등(numerical equality)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할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생산 및 복지총량을 줄여 오히려 사회의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보편적인 미국인의 인식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미국인들은 개인의 기여나 업적에 따른 시장에서의 차등적 보상이 개인의 근로 의욕을 고취시키고 투자와 저축을 유도하며, 혁신을 장려하여 사회 전체 차원에서 사회적 자산과 자원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분배를 위한 복지총량 또한 상대적으로 증가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고 믿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가치와 더불어 사회에 대한 개인의 기여 역시 정당하게 보상받아야 한다는 양면적 속성을 가진 이러한 조건의 평등에 대한 미국인들의 가치는 기회의 평등에 대한 가치와 더불어 오늘날 그네들 삶의 핵심적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만약 똑같은 이야기를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는다면 아마도 친구들과 나누어 먹을 것이라고 답변하는 아이들이 더 많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권선징악, 형제간의 우애, 부모에 대한 효도, 사회적 배려 등을 강조하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가치관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국가의 헌법 1조에는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조항이 나온다. 이러한 조항은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함을 역설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 닥친 대재앙과 원전 사고로 많은 일본인들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삶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다를 뿐 아니라, 삶의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불행이나 우연한 행운 등에 의해 불평등한 삶을 살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현실적 불평등이 불공정한 불평등이 아닌 공정한 불평등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의 공평 혹은 공정의 가치이다.

며칠 전 국내 한 신문이 국내의 전문가와 학자들을 초청해 공정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지난해 말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의 건설이 현 정부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라는 것을 공표한 이후 우리 사회에서 '공정'의 의미는 매우 뜨거운 사회적 이슈로 자리 잡은듯하다. 현 정부가 추구하는 공정이 공정한 불평등 다시 말해 서구식 공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극단적인 경우 경제적으로 부유한 집단이 자신이 정당하게 쌓은 부를 사회적 약자와 함께 나누지 않더라도 도덕적으로 전혀 문제를 삼지 않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의미일 테니 말이다.

신효진(경일대 교수·사회복지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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