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찾아서] 14. 독자가 보낸 사연<6>

여덟 손주들의 '까르르' 할머니 신경통 '스르르'

행복은
행복은 '자장면'이다. 굳이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노랫말을 떠올리지 않아도 어린 시절 '자장면'이란 단어만으로도 설렐 때가 있었다. 졸업식처럼 특별한 날이어야 먹어볼 수 있었던 자장면. 지금은 '그냥 자장면이나 먹지?'하면서 한 끼 대충 때우는 하찮은(?) 음식 대접을 받고 있지만 그 시절의 자장면은 아주 아주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행복'이었다. 글/일러스트 = 고민석 komindol@msnet.co.kr
칙칙폭폭 어린 시절 골목길은 이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그곳엔 우리들의 놀이가 있었고 즐거움과 슬픔, 더불어 사는 기쁨과 쓸쓸함도 있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약속이 없어도 하나 둘씩 골목에 모여듭니다. 가끔 다툴 때도 있지만 그네들과 만나서 웃고 떠드는 동안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뒷산으로 넘어가고 골목 초입에 있던 가로등이 켜질 무렵이면 집집마다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놀랍게도 늘 부르는 순서는 똑같습니다.
칙칙폭폭 어린 시절 골목길은 이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그곳엔 우리들의 놀이가 있었고 즐거움과 슬픔, 더불어 사는 기쁨과 쓸쓸함도 있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약속이 없어도 하나 둘씩 골목에 모여듭니다. 가끔 다툴 때도 있지만 그네들과 만나서 웃고 떠드는 동안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뒷산으로 넘어가고 골목 초입에 있던 가로등이 켜질 무렵이면 집집마다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놀랍게도 늘 부르는 순서는 똑같습니다. '병철아~', '준구야~', '만식아~' 지금도 불러보고픈 친구들 이름입니다. 어디서 무얼하며 살고 있을까요? 어디에 있건 부디 행복하길 바랄 뿐입니다. 사진=신철균(제13회 매일어린이전국사진전 특별상) 글=김수용기자

벨기에 작가인 메테를링크가 쓴 '파랑새'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가난한 나무꾼의 아이들인 틸틸과 미틸 남매가 크리스마스 전날 밤 꾼 꿈을 동화극으로 엮은 것입니다. 마법사 할멈으로부터 병든 딸을 위해 파랑새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개'고양이'빛'물'빵'설탕 등의 님프를 데리고 추억의 나라와 미래의 나라 등을 찾아갔지만 끝내 파랑새를 찾지 못했습니다. 꿈을 깨고 보니 자기네가 기르는 비둘기가 바로 파랑새임을 깨닫죠. 곽종상님이 보내주신 글은 바로 곁에 있는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과거나 미래에 있지도 않고, 많은 돈과 큰 집이 있어야 행복한 것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바로 지금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손자손녀들과 노는 재미

어린 손자손녀들과 노는 게 참 재미있다. 그들과 놀다 보면 내가 어린이가 된 것처럼 기분이 좋다. 아이들은 아주 작은 것에도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고, 아주 시시한 이야기에도 까르르 웃고, 별로 신나는 놀이가 아닌데도 재미있다며 자꾸 하자고 한다.

그들과 놀다 보면 내가 옛날 뛰놀던 때가 어제처럼 되살아나서 그때처럼 뒹굴며 놀게 된다. 그게 버릇이 된 건지 가끔은 혼자서 얼음길에 주르륵 발을 뻗어보기도 하고, 지하철로 내려가다가 쌍줄 난간을 만나면 걸터앉아 미끄럼을 타기도 한다.

어느 여름방학 때 딸의 푸념이 날아왔다. '집이 온통 난장판이 돼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다. 매일 전쟁을 하는 것 같아 정신이 없다. 어디 가서 조용히 며칠이라도 쉬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내용의 편지였다. 딸은 아이가 셋인데 막내가 네 살이라 한창 부산을 떠는 나이였다. 이걸 해결할 방도가 없을까? 궁리하다가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손자손녀들을 모두 한데 모으자는 것이다. 당시 네 자녀가 모두 결혼해서 손자손녀만 모두 여덟이었다. 이것을 딸에게 얘기하니 "아이고, 하나둘도 버거운데 애들 모두를 어떻게 감당하시려고요?"라며 안 된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여덟 명 모두를 모으니 가장 큰아이는 중학교 2학년, 가장 어린 아이는 겨우 네 살이었다. 마침 집이 한옥이었다. "여기는 아파트하고 달라서 너희들 마음대로 뛰고 고함을 질러도 괜찮다"고 하자 "와아, 신난다!"하면서 큰방에서 대청마루로, 작은방으로 부엌방으로 마치 서로 꼬리를 물고 줄을 지어 다니는 문쥐처럼 쿵쾅쿵쾅 뛰면서 큰 소리를 지른다.

야외에선 그렇게 놀았는지 모르지만 집안에서 그렇게 뛰고 소리치기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냥 왔다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신바람이 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예상보다 훨씬 잘 놀았다. 끼니 때도 투정부리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 집에서는 잘 먹지 않아 애를 먹였다는 아이도 옆에서 딴 아이가 맛있다면서 먹으니 덩달아 먹고, 간식도 아무거나 주는 대로 잘 먹었다.

가끔은 뛰어놀다 넘어져 울다가도 옆에서 얼러주면 일어나고, 토라져서 울다가도 곧 풀어져 다시 어울렸다. 한낮에는 더위를 식히려고 큼직한 물통에 물을 가득 받아 둘씩, 셋씩 들어가 첨벙거리기도 하고, 마루에 둘러앉아 윷놀이도 하고, 가끔은 놀이터나 학교 운동장으로 나가 땅따먹기, 도둑잡기, 공놀이도 했다. 이렇게 어울려 놀다 보니 며칠 사이 서로 정이 들어 집에 데려다 주려고 해도 안 가겠다고 한다. 처음 데려올 때엔 길어야 일주일 정도로 생각했는데 9일 만에 돌아갔다.

그동안 엄마들은 아이들이 보고 싶다며 전화를 여러 번 했다. '처음 하루이틀은 집이 절간처럼 조용해서 참 좋다 싶더니 사나흘이 지나자 그만 아이들이 보고 싶고 그렇게 떠들던 아이들이 있다는 게 사람 사는 거구나 절실히 느끼게 됐다'고 했다.

이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사촌들끼리 정이 흠뻑 들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겨울방학에도 꼭 여기 올게요" "그래 와야지. 우린 너희들과 이렇게 노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단다. 꼭 데리러 갈께." 그만큼 할머니 할아버니와도 정이 깊어졌다.

이렇게 시작한 손자손녀들의 합숙은 방학 때마다 꼬박꼬박 실시돼 7년을 계속했다. 그동안 서로 주고받은 정은 산더미만큼 높이 쌓였을 것이다. 손자손녀들과의 대화는 성인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곽종상(대구시 남구 대명9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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