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컬러풀 대구'라면서요? 칙칙한 교복 색깔부터 어떻게 좀 해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채색…학생들은 화사해지고 싶다

우중충한 잿빛 교복에 짓눌린 학생들이 아침 등굣길. 가뜩이나 학업에 치인 학생들의 모습이 칙칙한 교복 색깔로 인해 더욱 무거워 보인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우중충한 잿빛 교복에 짓눌린 학생들이 아침 등굣길. 가뜩이나 학업에 치인 학생들의 모습이 칙칙한 교복 색깔로 인해 더욱 무거워 보인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화사한 봄햇살이 쏟아지는 4월의 첫날. 하지만 오늘도 난 우중충한 잿빛 교복을 입고 등교 준비에 여념이 없다. 오늘이 벌써 금요일. 닷새 동안 교복을 세탁하지 못한 채 입다 보니 냄새마저도 우중충하다. 정신없이 흰색 셔츠에 조끼, 재킷을 입고 넥타이를 걸친 채 등굣길에 나서다 보니 남방은 치마 밖으로 삐죽이 나와있다. 넥타이는 삐뚤삐뚤 제자리를 잡지 못한다. 사실 교복이라는 것이 여간 신경 쓰지 않고서는 제대로 모양 나게 갖춰 입기 불편한 옷이다. 현관문 사이로 "그러기에 재킷과 조끼는 왜 딱 달라붙게 줄였냐"는 잔소리가 뒤통수로 날아오지만, 이게 유행인 걸 어쩌겠는가. 자칫하면 흰 셔츠가 밖으로 흘러나와 관리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대로의 멋이 있단 말이다. 버스를 타고 지나는 네거리 전광판에서는 '컬러풀(Colorful) 대구'라는 광고가 흘러나온다. 친구랑 이 광고를 볼 때마다 입을 삐죽거리게 된다. "컬러풀은 무슨! 제발 우리 교복이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예쁘고 컬러풀하게 만들어주면 안 되나. '드림하이'(방송드라마 제목) 교복 정말 짱이던데." 왜 우리가 한껏 빛나는 10대를 잿빛 교복과 흰색 양말 등 무채색 속에 갇혀 살아야 하는가? 정말 10대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누군가가 있다면 호소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명색이 컬러풀 대구, 섬유패션의 도시인데

섬유'패션의 도시라는 타이틀을 가진 대구. 게다가 '컬러풀 대구'를 도시 슬로건으로 내세우지만 전혀 색채 감각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도시다. 회색빛 빌딩과 공장으로 둘러싸인 도시 경관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침 출근길 흔히 마주치는 학생들의 교복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회색, 감색(어두운 남색), 검정이 거의 대다수를 이루는 것. 그나마 군청색이나 자주색이라도 있으면 눈에 띌 정도다. 디자인 역시 천편일률적이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학교별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할 정도로 디자인이 거기서 거기다. 대형 교복사 4곳의 제품이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소재 역시 비슷비슷한 수준이다.

서재중학교 박정곤 교장은 5년 전 대구시교육청 장학사로 근무하던 시절 매일신문 기고를 통해 "컬러풀 대구에 사는 학생들의 젊음과 희망을 담아내기에 현재의 교복 디자인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며 교복디자인지원센터 등을 설립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학생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색채나 디자인 감각을 길러주어야 할 감성의 시대이기 때문이고, 학생마다 개성과 젊음을 드러내도록 해 줄 인권의 시대라는 이유에서다. 또 대구가 야심 차게 기치를 내건 컬러풀 대구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대구를 대표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의 눈에도 대구는 패션도시라는 자부심이 무색할 정도다. 디자이너 박동준 씨는 "요즘 아이들에게 옛날 옷을 입혀 놓다 보니 대단히 잘못 매칭된 느낌을 받는다"며 "이왕이면 좀 더 재미있게, 감각 있게, 다채로운 색채로 만들 수 있는데 모두들 무관심한 것 같다"고 했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윤한영 기술지원본부장은 "색깔과 디자인도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원단에 있어서도 획일화돼 있어 안타깝다"며 "대구에서는 최신 기능성 소재들을 많이 만들고 있는데, 학교에서는 여기에 별반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했다.

◆매년 입학철에 논의할 수는 있지만

사실 학교들은 3월 신입생이 입학하면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교복 문제를 논의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교복'이 학교운영위원회 회의 주제로 논의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전통적으로 디자인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학교 교복을 바꾸자고 선뜻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학부모 김모(45) 씨는 "학부모들 사이에 요즘 아이들 교복이 뭐 저러냐는 불만은 많지만 이를 학교에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학교 입장에서도 교복 디자인을 바꾸는 것이 워낙 '거사'(巨事)에 해당하다 보니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한다. 정말 대단한 각오 없이는 수많은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일을 추진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박정곤 교장 역시 정작 자신이 재직 중인 학교의 교복을 개선하지는 못하고 있다. 박 교장은 "부임해서 수차례 교복디자인에 대해 고민을 해봤지만 학부모들의 경제적 여건을 고려하다 보니 쉽게 바꿀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서재중학교의 경우 매년 신입생이 260여 명 수준이지만 학부모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200여 명 정도가 매년 교복 물려입기를 하고 있는 상황인 것. 디자인을 바꾸게 되면 많은 학부모들이 교복값을 부담해야 하다 보니 기존의 교복을 그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교복과 함께 학생들의 외양을 더욱 답답하게 보이게 만드는 것은 바로 각종 '복장 규제'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두발 규제에서부터 심지어는 양말과 운동화 색깔까지 제한하다 보니 학생들의 감성마저도 획일적인 틀에 갇힐 수밖에 없는 것. 대구시교육청 창의인성교육과 김영탁 생활문화담당은 "교과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현재 지역에서도 대구교육권리헌장을 만들고 있다"며 "여기에는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이 강조될 예정이어서 학생들의 개성과 자율성이 좀 더 존중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교복'의 현실적 한계 벗어나기 힘드나

크게 맘먹고 디자인 변화를 시도한다고 해도 눈에 띄는 교복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교복의 현실적인 특성 때문이다. 교복은 마르거나 뚱뚱하거나, 키가 크거나 작거나 모든 아이들이 함께 예쁘게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이어야 한다. 그만큼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색깔 역시 제한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동복의 경우에는 세탁을 자주 하는 것이 곤란하다 보니 때가 잘 타지 않는 색깔을 찾을 수밖에 없는데다, 여름에는 보편적으로 흰색 상의에 짙은색 하의를 매치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

디자이너 성현지(31) 씨는 "다양한 컬러로 포인트를 줄 수는 있지만 사실 교복은 단체로 입어야 하는 유니폼의 성격이 있기 때문에 색상의 제한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더구나 한창 마음이 둥둥 떠다니는 사춘기 학생들에게 짙은 색 교복은 한결 자세를 단정하게 하고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효과를 주기도 한다는 것.

계명대 이승훈 패션학과장은 "올해부터 자율형 사립고로 새롭게 출발하는 계성고의 교복 디자인을 의뢰받아 교수들이 머리를 맞댔지만 생각보다 감각적인 디자인을 도안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색상, 디자인, 실루엣, 기능성과 활동성, 단가 등을 두루 고려하다 보면 결국에는 어두운 색상에 보편적인 디자인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 그는 "결국 여러 제약 조건상 색상과 디자인의 한계를 벗어나기가 힘들다보니 대신 소재를 고급화해 매끈한 실루엣과 차별화된 느낌을 강조하는 방향을 잡았다"고 했다.

지난해 능인중학교 교복의 디자인과 제작을 맡았던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장기환 시제품제작팀장 역시 "학부모와 학생, 교사 등 워낙 다양한 의견들을 반영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애초 제안한 것과는 사뭇 다른 디자인이 확정됐다"고 했다. 워낙 의견이 엇갈리다 보니 시제품을 만들기만도 열서너 번. 연구원 쪽에서는 가급적 화사한 색상으로 10대의 싱그러움을 강조하고 싶었지만, 학부모들은 때가 타지 않는 디자인을 요구했던 것. 장 팀장은 "심지어 '여름 흰색 교복 목부분만 때가 많이 타니 목 안쪽에 검은천으로 띠를 둘러달라'는 의견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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