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잠시 빌려 쓰는 지구, 깨끗하게 사용하고 물려줘야죠"…안경숙 닥터안자연사랑연구소장

안경숙 닥터안자연사랑연구소장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듀퐁사의 아크릴실로 친환경 수세미를 짜고 있다. 10분도 안 걸려 완제품 하나가 뚝딱 탄생한다.
안경숙 닥터안자연사랑연구소장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듀퐁사의 아크릴실로 친환경 수세미를 짜고 있다. 10분도 안 걸려 완제품 하나가 뚝딱 탄생한다.

'태생적 DNA와 환경적 DNA'

한 사람의 지금 모습을 조명하는 데는 이보다 더 정확한 분석은 없을 듯하다. 유명인이나 남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인물들을 만날 때면 오늘날 그 사람을 있게 한 것이 무엇인지 늘 궁금하다. 그래서 그 기저에 있는 부분을 빨리 알아내려고 여러 질문들을 해보고, 가슴도 후벼파려고 여러 액션들을 취해 본다.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의사 출신 환경운동가 안경숙(51) 닥터안자연사랑연구소장이다. 이미 지역에선 많이 알려져 있는 터라 뭘 찾아낼지 고민이 앞섰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곳에 역시 답이 있었다. 안 소장의 모친 유정희(74) 씨는 오늘날 1남3녀가 다들 잘살 수 있는 밑거름을 준 핵심 DNA 공급처였다.

대구에서 태어나 5곳의 초등학교를 다닌 뒤 제일여중-효성여고-계명대 의대를 졸업하고 경산군(당시) 보건소장으로 시작해 지금의 자랑스런 환경운동가로 우뚝 선 안경숙! 일단 저지르고 보는 성격으로 태생적으로 부지런하고(조금 부정적으로 보면 다소 분잡한), 긍정적 바이러스로 똘똘 뭉친 안 소장의 라이프 스토리텔링을 한번 풀어봤다. 점심식사를 곁들인 2시간여 인터뷰 시간이 즐거웠다.

질문>안경숙, 그 안에 내재한 결정적 인물은?

초교 4학년 때, 그러니까 우리 나이로 11살 때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하늘나라로 갔다. 네 아이를 거느린 어머니는 더 강해졌다. 어려움 속에서도 어머니가 놓지 않았던 특유의 나눔과 긍정 바이러스는 네 자녀를 행복하게 키울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4남매 가운데 안경숙은 어머니의 바이러스에 가장 강하게 전염된 맏딸이었다. 모친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탓에 단칸방에서 다섯 식구가 살았지만 불평·불만보다는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사랑의 공간으로 단칸방을 승화시켰다.

안경숙의 집은 일종의 요술램프 같았다. 오늘날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고) 운동을 일찌감치 실천하는 공간이었던 것. 이웃집에서 쓰던 옷을 가져와 아이들에게 입히고, 물김치나 호박범벅을 많이 만들어 이웃들과 나눠 먹고, 이웃에서 주는 반찬들도 기꺼이 고마운 마음으로 식탁에 올렸다. 이런 생활 때문에 맏딸에겐 이미 시민사회운동가로서 자질이 싹트고 있었다.

또 중요한 사실 하나. 1남3녀 모두 사회적 공헌도가 높은 인물이다. 딸 셋 중, 첫째와 셋째는 의사가 됐고, 둘째는 명성이 있는 현대미술가, 막내아들은 대한민국 최고 대학, 인기학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후학 양성에 몸을 담고 있다. 이들 4남매는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지만, 장녀의 자연사랑 운동에도 동참하고 있다.

남편 정명환(52) 씨 얘기도 빠뜨릴 수 없다. 아내의 일을 마음으로 도와주는 조력자다. 딸 정다영(경북대 경영학과 3년) 씨는 3대에 걸친 시민 환경사업가의 완결판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 아직은 미래가 불투명하지만 친환경 창조적 사회적 기업을 일구는 것이 장래 희망이다.

기자가 이 가족사를 알고 난 뒤, 질문의 정답인 어머니의 유정희 씨의 사진을 요청했으나, 대구에 살고 있는 어머니가 민망하고, 부끄럽다며 살짝 사양하기도 했다.

답>아직도 건강한 엄마, 유정희

◆도전과 응전, 그리고 또 도전

안경숙의 인생 스토리를 이렇게 요약해 봤다. 나눔과 긍정 바이러스를 가진 환경 친화적 소녀가 의대를 졸업하고, 보건소에서 사회 첫발을 내디딘 뒤, 결국은 환경운동가로 열정적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인생에 있어 놀라운 것은 과감한 도전이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외면하기 어려웠던 맏딸은 어머니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기 위해 국비 장학금을 받았고 졸업 후 4년간 의무적으로 국가의료기관에 일해야 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래서 시작된 보건소장의 삶. 하지만 그는 의무 근무 기간을 마친 뒤에도 보건소를 떠나지 않았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아버지뻘인 보건계장 등과 함께 주민에게 다가가는 보건행정의 혁신을 이루려 노력했다. 일정 부분 성과도 컸다. 4년의 의무 근무 기간이 지나고 5년의 세월이 더 흐른 시점, 보건소 행정 일을 계속 하고 싶었던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 찾아왔다. 바로 삼성생명 대구총국의 의무실장 자리.

변신은 또 변신을 낳는 법. 3년간 대기업에서 안정적으로 일했지만 한 달간의 IVP(International Visit Program) 미국 연수 프로그램을 위해 사표를 던졌다. 미 국무성이 주최하는 IVP는 영국 마가렛 대처 전 수상을 비롯해 전 세계 유명인사들이 참여했던 최고의 프로그램이다. 미국 체재비 지원뿐 아니라 전 세계 주요 인사를 만날 수 있는 기회와 미국 주요 기관들을 방문하는 기회도 주어진다.

이 한 달의 도전은 그의 직업을 앗아 갔지만 환경운동가로서의 본격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해 준 계기가 됐다. 경제적 안정을 위해 동생(셋째)과 수성구 시지에서 가정의학과 의원을 개원했지만 이보다는 녹색연합 대구경북지부 회장이 본연의 업무였다. 그리고 6년 전 닥터안자연사랑연구소의 문을 활짝 열었다. 앞으로의 꿈도 분명하다. 다음달에 중구 유신학원 인근에 황토방으로 된 환경센터의 문을 열지만, 이는 작은 꿈의 실천에 불과하다. 큰 꿈은 대구에 규모의 경제가 가동될 수 있는 환경센터 건물을 짓는 것이다.

◆수세미도 만들고, NIE도 선두주자

기자는 안 소장의 능수능란한 뜨개질에 놀랐다. 다국적 기업인 듀퐁사에서 만들다가 경제적 이용가치가 떨어져 버려지다시피 한 아크릴실을 이용해 친환경 수세미를 짜는 데 인터뷰를 하면서 보지도 않고 7, 8분 만에 뚝딱 하나를 만들었다. 가격은 1천500원. 이는 일자리 창출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2명의 노인이 일하지만 일감이 많을 때는 5명의 노인이 하루 종일 이 친환경 수세미 짜는 일을 한다. 그리고 이 수세미를 주문받은 곳에 안 소장이 직접 배달해 준다. 탤런트 차인표를 비롯해 유명 연예인이나 정계·재계·관계 인사들에게도 나눠준 수세미다.

미래 세대를 위한 녹색환경 교육에도 앞장서고 있다. 두 동생의 도움도 크다. 둘째의 재능은 '땡이 미술'이라는 미술 교재를 통해 친환경 교육에 활용되고 있으며, 셋째는 가정의학과 의원을 운영하면서 언니가 하는 각종 이벤트 및 자연사랑 캠페인을 돕고 있다.

특히 매일신문, 중앙일보 등 신문과 함께 하는 NIE(Newspaper In Education) 분야에서는 대한민국의 선두주자다. 3년 전에는 반월당역 메트로프라자에 '닥터안 NIE 교실'까지 개원했으며, 주요 일간지와 함께하는 NIE 프로그램을 직접 이끌었다. 더불어 어린이들의 녹색 교육 첨병, 초록기자단도 운영해 기수별 교육과 함께 활동을 지도하고 있다.

그는 이런 멋있는 말도 할 줄 안다. "우주의 푸른별 지구는 우리들 것만이 아닙니다. 잠시 빌려다 쓸 뿐이죠. 깨끗하게 사용하고 후손들에게 물려줘야죠."

사무실에 '우리밀로 만든 새우짱'이라는 과자가 있었다. 기자는 인터뷰가 끝나고 이를 가져가려 하자, "1천500원입니다. 과자값 내야죠"라는 말이 귓가를 때렸다. 그런데 실제로 돈을 주지는 않았다. 친환경 인터뷰(?)를 해 준 선물로 공짜로 받았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수성구보건소장 도전 '고배'…안경숙 소장의 좌충우돌

안경숙 소장의 인생은 변화가 많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지금까지도 그랬다. 얼마 전 또 다른 변화를 시도했다. 안 소장은 수성구보건소장에 도전장을 냈다. 하지만 결과는 고배를 마셨다. 그는 나름대로 경산에서 보건소장을 했던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보건행정에 환경을 덧씌우려 했던 마음이 간절했는데 아쉽게 다른 후보에게 밀려 탈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는 '환경운동에 온 마음과 정성을 쏟아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안 소장은 이번 인터뷰를 통해 주부들에 대한 메시지도 보냈다. "그래도 가정의 중심은 주부입니다. 주부가 환경문제를 이해하고, 그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면 가족 전 구성원에 파급될 수 있고, 이 사회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그는 가정에서 쌀뜨물로 설거지를 하면 1년 동안 32억원 어치의 물을 아낄 수 있다고 했다.

행정기관과도 친환경 운동을 펼치고 있다. 달서구청에서 실시한 여성주간 행사에서 아크릴 수세미 만들기를 가르칠 뿐 아니라 중구청과 함께 친환경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 그는 "남들이 절 보고 심하게는 '싸이코', 좋게는 '작은 에너자이저'(끊임없이 힘이 솟는 건전지같은 인물)라고 하지만 저는 제게 주어진 환경운동의 길을 좌충우돌하면서 뚜벅뚜벅 갈 뿐"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권성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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