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 5일 발효됨에 따라 과학벨트 유치전이 불붙고 있다.
정부는 오는 7일 과학벨트위원회 첫 회의를 열어 과학벨트 기본계획 수립에 착수하고 상반기 중에 입지를 선정할 방침이다.
과학벨트 조성은 예산규모가 3조5천억원에 이르는 사업인 만큼 전국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눈독을 들이고 있다. 최근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 백지화된 터라 현 정부의 마지막 대형 국책사업인 과학벨트를 품에 안으려는 경쟁은 더욱 뜨겁다.
대전.충청권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점을 들어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나 다른 지역에서는 지역균형 발전 논리를 내세워 '분산 배치론'을 펴거나 독자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과학벨트 유치 경쟁은 양자대결 구도(부산 대 대구.경북.경남.울산)였던 신공항 유치전과 달리 대부분의 지자체가 뛰어드는 다자 구도여서 지역 갈등이 심화하는 등 후유증이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전.충청 "대선공약 지켜야..산업파급효과 우수" = 대전과 충남, 충북 등 충청권은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2007년 10월 과학벨트 사업을 공약으로 제시한 만큼 이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전의 대덕연구개발특구와 충남 연기.공주의 행정중심복합도시, 충북 오창.오송단지를 하나의 광역 경제권으로 묶어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년 12월 입지가 충청권으로 명시되지 않은 채 과학벨트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다급한 상황이 됐다.
이에 따라 이들 시.도는 과학벨트 '사수'를 위한 공동건의문을 교육과학기술부와 국회, 청와대에 제출하고 지역 국회의원 주최 간담회, 과학기술계 인사들과의 토론회 등을 개최하며 여론 형성에 나서고 있다.
3개 시.도는 '과학벨트 충청권 조성 종합계획' 수립을 위한 공동 연구용역을 추진해 그 결과를 토대로 정부에 사업제안서를 제출하는 등 입지 선정에 대비한다는 계획이다.
이들 지자체는 "충청권은 접근성이 뛰어나고 공공 연구기관과 대학연구소, 기업체 연구소 등이 몰려 있어 과학벨트가 조성되면 산업적 파급 효과가 가장 우수하다"고 주장했다.
40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과학벨트 대선공약 이행 범충청권 비상대책위원회'는 5일 오후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역민 242만명의 서명지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광주.전남 "내륙 삼각벨트로 지역균형 발전" = 광주시는 과학벨트 조성안으로 광주.전남에 본원, 대구.경북에 제2캠퍼스(분원), 충청권에 제3캠퍼스를 설치하는 '삼각벨트론'을 주장하고 있다.
광주시는 광산업 육성 성공 경험과 한국광기술원, 고등광기술연구소, 전자부품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호남본부 등 과학기술 인프라를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다 광주 첨단과학산업단지 내 연구인력이 1천여명에 달해 과학기술 인력 공급에 장점이 있고 지반 안정성과 재해 안전성이 뛰어나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운태 광주시장은 5일 성명을 통해 "과학벨트 위원회는 정치적 논리를 배제하고 지역 균형발전과 국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엄정하게 심사해야 한다"며 "일본과 독일의 분산 배치 목적이 지역균형과 특화산업 육성에 있는 만큼 공정하고 엄정한 평가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광주시는 광주.전남지역 민주당 국회의원들과 함께 과학벨트 위원회에 광주.전남 유치의 타당성을 적극적으로 알릴 계획이다.
광주.전남대학총장협의회 소속 총장 20여명은 최근 성명에서 "과학벨트는 내륙 삼각벨트가 최선"이라며 "정치적 논리가 아닌 기초과학연구의 안정적 수행을 통해 산업화의 취지를 달성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특구와 연계해 설치돼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상공회의소는 과학벨트 유치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 등 6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대구.경북.울산 "산업기반 최적..정치논리 안돼" = 대구시와 경북도, 울산시는 산업기반이 가장 우수한 동해안 지역에 과학벨트를 조성해야 하며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과학기술 투자가 분산돼야 한다고 밝혔다.
자신들의 지역에 3대 가속기와 포스텍(포항공과대) 등과 같은 과학연구 기반이 갖춰져 있고 교육.문화 등 거주 환경이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과학벨트 구축은 국가 백년대계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면서 충청권을 의식한 듯 대선 공약 이행과 같은 '정치적 접근'은 배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3개 시.도는 14일 상공회의소 간담회, 30일 울산포럼, 내달 중에는 서울포럼 등을 잇따라 열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경북 포항에 있는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의 피터 풀데(75) 소장은 "과학벨트는 충분한 과학 인프라를 갖추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산업단지가 적지"라며 "이 점에서 포항은 큰 강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관용 경북지사는 "과학벨트 입지 선정은 특별법 절차와 기준에 따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정치적 접근을 배제하기 위해 과학벨트 위원회에 해외 석학을 참여시키도록 교과부에 건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정치권에서 내륙 삼각벨트안을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기초과학 없이 지역 안배만을 고려한 것으로 과학계가 원하지 않을뿐더러 과학벨트 조성 목적에도 안 맞아 수용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경남.창원 "과학벨트 입지요건 모두 충족" = 경남도와 창원시는 지난 1월 과학벨트 유치위원회를 구성하고 과학벨트 입지로 진해구 웅동지구를 중심으로 연구기관이 몰려 있고 산업클러스터가 형성된 창원지구를 제시해 놓은 상태다.
창원지구의 강점으로 방대한 산업 인프라와 공항.KTX.항만 등 교통 인프라를 내세웠다. 연구.산업기반 구축 정도, 접근성, 부지 확보 용이성, 부지 안전성, 정주 여건 등 과학벨트법이 규정한 입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어 과학벨트 입지로 최적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창원시는 이런 점을 근거로 지난달 2일 국회에서 유치 설명회를 개최하고 지난 4일에는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정책포럼을 여는 등 과학벨트 유치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앞으로는 중앙정부를 상대로 홍보전을 펼 방침이다.
특히 지난해 7월 창원시가 국내 최초의 자율통합시로 출범한 점을 들어 특정지역 개발을 위한 지구·지역 등을 지정할 때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창원시는 경남도와 협의해 부산, 대구, 경북과 연대해 영남권에 과학벨트를 유치하고 창원이 과학벨트의 한 축을 담당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경기 "정부 공모 이후 유치전 참여 여부 결정" = 경기도는 과천을 과학.교육.연구 중심도시로 육성해야 한다는 기본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과학벨트가 필요하다고 보지만 유치를 위한 공식적인 의사결정이나 활동은 아직 하지 않고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정부 과천청사 및 공공기관 이전부지와 관악산 일부 등 120만여㎡를 적지로 보고 있다"며 "중이온 가속기는 지반이 안정된 관악산에 들어서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민간 차원에서는 과천 유치를 위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부에서 과학벨트를 공모하면 공식적인 유치전에 돌입할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최근 한 라디오에 출연해 과학벨트 유치신청 계획과 관련, "확정한 것은 없다"면서 "대선이나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과도하게 개입을 해서는 안 되며, 과학은 과학자가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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