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쯤부터 사무실 근처에 있는 오디오 가게를 지날 때마다 늘 눈여겨보던 스피커가 있었다. 이탈리아의 소너스 파베르(Sonus Faber)에서 만든 스트라디바리는 오디오 가게의 가장 중앙에 자리 잡고서 그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볼 때마다 늘 두려웠다. 소유에 대한 욕망이 마음을 해하지 않을까 서둘러 눈길을 거두며 돌아서곤 했지만 매번 그 욕망 앞에 눈과 귀는 열려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독수리표 전축을 가진 친구는 아버지가 없을 때, 집으로 데려가 음악을 들려주곤 했다. LP 판에서 흘러나오던 김정호의 '하얀 나비'는 작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와는 확실히 달랐지만 감히 가져 볼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가끔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팝송과 클래식을 들으며 그저 알지 못할 박탈감에 아파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우연히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본 외산 오디오는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 오디오가 웬만한 집 한 채 값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소리는 그나마 독수리표 전축을 동경하던 고등학생의 눈에는 가히 소리의 끝인 것처럼 들렸다.
지역의 예술협회의 회장을 맡고 있던 친구의 아버지는 늘 집을 비웠고 그 오디오는 가끔이긴 했지만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연주를 들려주곤 했었다. 그때 바흐는 진지했고 베토벤은 격렬했다. 그리고 슈베르트는 비장했고 슈만은 섬세했다. 스승의 아내를 사랑했던 브람스의 우수를 듣던 음악감상실 녹향이 가난한 대학생의 유일한 해방구가 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분노로 가득차 있었고, 라흐마니노프를 들려주던 테이프 레코더마저 사치가 되었을 때, 음악을 듣는 것은 스스로에게 금기가 되었다. 그 후 나이가 들어 다시 듣기 시작한 음악은 세상을 바꿀 수 없었던 젊은 날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수없이 오디오를 바꾸고 더 나은 소리를 찾았지만 여전히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프랑코 셀브린이 만든 스트라디바리는 오디오도 하나의 악기라는 그의 철학을 그대로 투영한 것이다. 듣는 것과 보는 것을 만족시키는 스피커, 수작업을 통해 만든 스트라디바리는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이라는 그 이름처럼 아름다운 소리와 외형을 지니고 있다. 결국 가지고 있던 스피커를 팔고 대출을 받아 스트라디바리를 집으로 가져 오던 날, 죄의식에 몸을 떨었다. 소유의 욕망이 범한 젊은 날의 가난에 대한 맹세, 그 끝에 얻을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후회와 회한 속에 얼마나 몸부림쳐야만 가진 것을 버릴 수 있을까? 새벽, 죽음의 고통을 넘나들며 지켰던 클라라 하스킬의 모차르트가 눈앞에 펼쳐진다.
전태흥(미래티엔씨 대표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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