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수도권 공화국

"국책사업에 B/C(비용 대비 편익 비율)를 왜 하나. B/C 나오면 민간에서 하지, 왜 정부에서 하겠느냐." "10조 원 안팎의 많은 예산이 들고, B/C가 낮고 경제성이 없어서…."

"고향에 뼈를 묻겠다. 지역 발전에 몸을 던질 테니 한 표를 달라." "솔직히 지역민이 공천권을 주나, 중앙당이 공천을 하지. 선거 때 잠시 머리만 숙이면 되지…."

이명박 대통령은 아침저녁으로 말을 바꾸고, 지역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겉과 속이 다르다.

이 대통령의 조변석개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세종시 문제를 두고 서울시장 재임 시절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행정수도 이전을 막고 싶다'고 했다가 대선 과정과 당선 후엔 '원안 추진'을 수차례 약속했다. 2010년 원안인 행정중심복합도시를 폐기하고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로 밀어붙이다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자 결국 원안 추진으로 되돌렸다.

동남권 신공항의 말 바꾸기도 그렇다. 이명박 정부는 B/C를 포함한 경제성 부족을 결정적 이유로 들어 백지화했다. 국비만 22조 원이 웃도는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아예 B/C 등 경제성 분석 얘기조차 꺼내지 않았다. 국비 11조2천700억원 규모의 호남고속철도 사업은 B/C가 신공항(0.7)에 턱없이 못 미치는 0.39에 불과한데도 2009년부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총 비용이 22조원이 넘는 새만금 개발사업도 경제성이 낮지만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해온 지역 인사는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대형 국책사업은 B/C 등 경제성 분석에 개의치 말고 균형 개발 차원에서 적극 추진할 것을 수차례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2008년 자신이 주재한 '제2차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도 평소 지론을 반영했다. 동북아 제2 허브공항 건설 등 30대 선도프로젝트를 국책 사업으로 확정, 추진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날 추진 방안에는 '선도프로젝트를 국책 사업으로 선정해 타당성조사는 B/C 등 경제성 분석보다는 비용 절감, 환경 친화 공법 적용 등 효율적 추진 대안 제시에 중점을 둔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입지 선정만 남겨둔 상태에서 신공항 건설 사업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쳤다. 이 정부가 신공항을 백지화시킨 논리대로라면 모든 국책 사업은 수도권에 몰아줘야 한다. B/C와 경제성이 높은 수도권 공화국이 되고, 수도권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친정인 한나라당의 국회의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수도권 의원들은 신공항 무용론에 목소리를 높이고, 지역 의원들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대다수가 태생만 지역인 수도권론자들이기 때문이다. 차기 총선을 의식해 일시적으로 대통령과 정부 정책에 목소리를 내는 시늉만 할 뿐이다.

수도권론자들 입장에서는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통해 기득권을 제대로 지켜냈다. 나아가 수도권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수도권 독(과)점을 더 공고화하려는 움직임이다. 자본, 문화, 교육, 정보 등 전 분야에 걸친 수도권 독점 현상은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 정당 독점의 폐해도 고스란히 지방이 떠안고 있다.

호남의 한 공직자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할 때 호남 지역 발전을 위한 정책과 사업이 가장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 수도권과 강원 지역에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충청권에서는 자유선진당을 포함한 3개 정당이 속내는 '표를 위해' '정당 기반을 위해서'이지만, 치열하게 각축하는 과정에서 지역의 굵직한 현안들을 풀어내고 있다.

대구경북은 어떠한가. 한나라당 국회의원 대다수의 관심은 시도민의 여론이나 지역 발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신공항 건설, 수도권 규제 완화 등 지역 현안에 대해 시도민의 진정한 대변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의 눈과 귀는 지역민보다 공천권을 행사하는 중앙당에 쏠려 있다. 경쟁할 상대 당이 없기 때문이다. 일당 독점이 낳은 결과물이다. 시도민들이 지역의 일당 독점 구조를 깨든지, 공천이 당선으로 연결되는 구도를 바꾸지 않는 한 영원히 수도권 집중화에 쓴잔을 마셔야 할 것이다.

김병구(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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