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아버지의 꽃밭

김계희(그림책 작가)
김계희(그림책 작가)

아버지는 곧잘 비오는 날을 골라 절집에서 얻어온 꽃을 심다가 내팽개치곤 술 마시러 가고, 담벼락을 줄줄 흘러내리는 흙탕물이 보여요 또, 술 취해 오신 아버지는 어머니가 차려 온 더운 밥상을 팽개쳤어요 닭들이 와서 쪼아 먹었어요 늘 어머니는 꽃 피우는 것처럼 상을 차리시고, 아버지는 상을 팽개치고, 어느 때는 그 붉은 김치꽃 핀 마당에 생선 조각이 뒹굴어 딸들이 엎드려 주워 먹었어요 아버지의 내던진 밥상이 바로 딸들의 가슴에 던져진 것을, 딸들이 이토록 오래 아버지의 울음 속을 살고 있는 것을, 그때 아버진 몰랐을 거예요.

박정남

이런 꽃밭 보셨나요? 아버지들은 왜 화가 나면 밥상을 엎었을까요? 가부장제에서 아버지라는 폭력, 아버지라는 억압, 아버지라는 상처는 엎질러진 밥상처럼 화려했지요. 마당에 상을 팽개치는 아버지와 꽃밭처럼 다시 상을 차리는 어머니. 그 억압과 굴종의 관계는 어둡고도 길었지요.

여성성의 무의식 깊숙이 똬리를 튼 아버지의 억압기제, 그 상처가 오랜 후에 또 다른 상처를 낳으며 질병으로 자리 잡아온 일을 무어라 할 건가요. 그 천둥과 우레의 세월을 고스란히 견딘 어머니와 딸들은 남성에게서 아버지를 보는 착란을 거치곤 한다는데요. 사랑하는 남성을 만나서도 거부와 경계의 자세부터 취하게 된다는데요. 혹은, 싫어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닮아간다는데요. 그 어두운 무의식들은 또 무어라 할 건가요.

아버지의 고난을 백 번 이해한다 해도 아버지시여! 이 땅의 딸들은 그런 꽃밭은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바닥에 내팽개친 붉은 김치꽃과 생선조각은 이제 그만 주워 먹고 싶답니다. 그 자리에 채송화나 팬지, 다알리아나 꽃무릇, 이름만으로도 예쁜 그런 꽃으로 바꿔주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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