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너무 자연스러운 뻔뻔함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과정에서 수도권 이기주의에 대한 지방민들의 인식 뚜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과정에서 얻은 원치 않은 소득이 있다면 수도권 이기주의에 대해 많은 지방민들이 똑똑히 인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서울 지역 언론과 수도권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이기주의는 신공항의 필요성을 아예 따지지도 않고 외면했으며 납득하기 힘든 경제성 논리를 내세워 지방의 목소리를 뭉개버렸다. 서울의 보수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중도 혹은 진보 성향의 언론까지 기존 지방 공항들이 적자라는 점을 들어 하나같이 신공항 백지화 쪽으로 결론을 이끌었다.

그 같은 비교 논리가 신공항 건설이 기존 지방 공항의 존재와는 차원이 다른 국책 사업이라는 점에서 전혀 타당하지 않았지만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사실 수도권 이기주의의 음험한 움직임은 진작부터 있었다. 참여 정부에서 지방 균형 발전 정책이 실시되고 지방 분권 운동이 활성화되다가 2004년 10월 21일 행정수도 건설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그 실체가 감지됐다.

서울이 조선시대 때부터 수도였다는 '관습헌법'을 위헌 근거로 내세웠는데 수긍하기 어려운 논리였다. 그 후 참여 정부 말기인 2006년 5'31지방선거를 전후해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수도권 규제를 완화해 서울과 경기도, 인천을 하나로 묶는 '대수도론'을 주장했다.

이에 김범일 대구시장 등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반발했으나 김문수 지사의 대수도론은 당시 수도권에서 호응을 얻었다.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 실장을 지낸 유우익 주중 대사는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이 무렵, 서울의 유력 일간지에 대수도론에 공감하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이 유력 일간지는 수도권 중심 국가 발전론을 기사로 다루기도 했다. 서울에 집중 투자를 해 국가 발전을 이끌면 지방도 따라서 성장한다는 내용으로 스페인이 수도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국가 발전을 꾀한다는 사례도 제시했다.

이후 들어선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의 정책과는 반대의 길을 가게 됐고 지방 균형 발전 정책도 '5+2' 정책으로 축소됐다.

2008년 7월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 강연회를 통해 서울이 빠르게 성장하는 세계의 다른 대도시들과 경쟁하기 위해 수도권 규제를 완화, 서울 중심 국가 발전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은 이러한 배경을 깔고 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국토 균형 발전의 가치는 사라지고 수도권 사람들이나 비수도권 사람들 모두 수도권 비대화에 대해 무감각하게 됐다.

1970년대부터 박정희 정부가 수도권 과밀화를 우려해 실시한 수도권 억제 정책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져 갔다. 국가의 머리는 지나치게 커지고 몸통과 팔 다리는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졌지만 소수의 사람들만 이를 우려할 뿐 많은 사람들이 수도권 비대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수도권 이기주의는 너무 자연스럽게 뻔뻔해졌다. 수도권 중심론이 그렇지 않아도 극심한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더 벌려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도권의 이익만 챙기기에 바쁘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국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엘리트 관료와 국회의원들, 양식 있는 기사를 전달해야 할 언론들 할 것 없이 죽어가는 지방을 외면하고 있다.

신공항 백지화 과정에서 이 같은 인식을 드러낸 경북 영천 출신의 김문수 경기도지사, 경북 영양 출신의 이재오 특임장관, 대구 출신의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 서울 출신의 정두언 국회의원 등 유력 인사들이 지방이나 서울 출신을 가리지 않고 수도권 이기주의에 매몰돼 있다.

지방 사람들은 오래된 중앙집권주의에 길들여진 탓인지 서울을 지나치게 존중해왔다. '서울특별시'가 특별하다고 여기며 수도권 이기주의가 극성스럽고 뻔뻔하게 변해가는데도 그런가 보다 했다.

염치없이 '대수도론' '서울 중심 발전론'이 제기될 때에도 수도권과 비수도권 자치단체장들의 다툼 정도로 생각했다. 신공항 백지화로 뒤늦게 일기 시작한 지방의 분노는 더 일찍 일어났어야 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갈등이 바람직하진 않지만 뻔뻔스러운 수도권 이기주의가 이러한 갈등의 원인임을 알아야 한다.

金知奭(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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