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공항 백지화를 발표한 날 밤, 한 공영방송의 뉴스는 지방공항 실태를 보도했다.
'국책사업 자칫하면 적자'라는 뉴스는 지방공항의 적자투성이 운영실태를 낱낱이 까발렸다. '승객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무안국제공항'과 '주 1회 국내선 경비행기만 뜨는 양양국제공항' 현장에서 기사는 '이 판에 무슨 신공항 타령인가'라고 힐난하는 듯했다.
신공항을 지역이기에 눈먼 망국적 정책으로 몰아붙이는 서울지역 언론의 보도 태도가 역겹다. 익명의 고위층 입을 빌려 백지화를 기정사실화하고, 지역 출신 전직 국회의장의 원점 재검토 발언을 용기 있는 결단이라고 치켜세웠다. 심지어 한 신문은 "지역 정치인과 언론이 민란을 들먹이며 지역이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공약과 사태를 방치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나무랐다. 하지만 영남 주민들의 무리한 욕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각시키는 데 힘을 쏟았다.
동남권 신공항은 단순히 덕 좀 보자는 터무니없는 지역이기주의가 아니다. 신공항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 남부권 항공 수요에 대처하려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나아가 폭증하는 세계 항공 수요와 국제 항공 전쟁에 대비한 '동북아 제2 허브공항 건설'이란 원대한 포부이자 새로운 성장전략이다. 국토 균형발전이란 오래된 국정의 가치가 밑바닥에 깔려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정부는 끝내 동남권 신공항이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놨다. 김해공항 수요가 갈수록 급감할 것이라는 이 대통령의 발언처럼 실제와 괴리된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환승이나 환적화물 등 잠재적 수요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국토연구원의 일방적 경제성 평가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 틀림없다. 무엇보다도 이 정부의 수도권 중심의 편협한 정책이 작용했을 것임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결국 효율과 경제성을 허울 삼아 국토의 균형발전을 외면한 중앙 집중적 정책에 서울지역 언론이 야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서울지역 언론이 수도권 중심의 이익에 집착해 온 것이 어디 한둘인가. 그들에게 작동하는 경제성과 효율은 수도권의 이익이 전제된 이율배반적 논리다. 지방은 굶어 죽든 말든 수도권에 모든 게 집중돼야 한다는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지금도 그들은 수도권의 규제 완화를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전 국토의 12%에 불과한 면적에 인구와 경제력이 절반이나 몰린 수도권은 중증의 비만에 시달리고 있다. 비대한 수도권에 모든 걸 집중시키려는 것은 병증을 더 깊게 한다. 과밀화가 불러온 교통, 환경, 주택, 물가 문제가 수도권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을 언제까지 외면하려는가.
어쩌면 국토 균형발전의 가치가 서울지역 언론에 의해 지속적으로 왜곡돼 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왔다. 균형발전을 위한 여러 국책사업을 노무현 정부의 포퓰리즘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세종시,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등을 지방민의 인기에 영합한 정략으로 폄하도 서슴지 않았다. 동남권 신공항 역시 그렇게 봐온 것은 아닐까.
효율과 경제성만을 따진다면 핵발전소도 수요가 많은 수도권으로 끌어와야 마땅하지 않은가. 지방을 수도권의 하부구조, 수도권의 이익에 봉사하는 식민지 정도로 치부하는 약육강식의 야만적 논리는 타파돼야 한다.
대통령과 정부도 마찬가지다. '5+2 광역경제권 30대 선도 프로젝트' 등을 추진한다고 하지만 신공항이 무산된 마당에 얼마나 설득력이 있겠는가. 지방의 국민을 일방적인 설득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명박 정권은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통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다 드러냈다. 국정 철학의 빈곤, 사회통합 능력의 상실, 리더십 부재, 수도권 일극주의, 책임 방기와 언어 유희 등 앞으로 더는 보여줄 것이 없을 듯하다. '수도권 공화국' 대통령에게 지방 민심이 뭐 그리 대수겠는가.
이제 지방은 더 이상의 '정치 쇼'를 원치 않는다. '수도권 공화국'에 대한 환멸이 한계점을 넘어섰다. '지방' 중심의 새로운 틀을 모색해야 한다. 지방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스스로 증명할 때다.
(김재진 대구 서구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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