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지인들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술자리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한 사람이 이야깃거리로 등장했다. 대개 그 사람은, 특히 술자리에선, 도마 위에 오른 식재료처럼 난도질을 당하게 마련.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 "○○은 왜 사람들을 고달프게 하는지 모르겠다. 일전엔 이러저러한 일까지 있었다"라며 칼을 빼들었다. 옆에 앉은 사람은 부주방장격이다. 맞장구를 치며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고 거든다. 이쯤 되면 술자리에 없는 그 사람은 어디선가 귀를 쑤셔대며 괴로워할 판이다. 그 때 제3자가 나섰다. 조금 전 털어놓은 불평, 불만에 대해 상황 설명을 했다.
"그때 상황은 이랬고 저랬으며, 당사자로선 어쩔 수 없었다." 해명을 듣고 난 두 칼잡이가 머쓱해했다. 아마도 돌아가는 상황도 모른 채 누군가를 욕한 사실이 부끄럽고, 그런 일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자신이 쑥스러웠을 터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마라'를 쓴 행복 전문가 리처드 칼슨. 2천100만 부가 팔린 이 책을 쓴 뒤 똑같은 질문이 담긴 수천 통의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사소한 것은 무시한다고 치고, 큰일이 생기면 어쩌나요?"
행복까지 포기할 만큼 '큰일'은 도대체 무엇일까? 고통과 슬픔, 불안과 질병, 죽음과 상해, 나이듦과 경제적 어려움 중에 하나를 흔히 '큰일'이라고 여길 것이다. 사실 고민스럽고 두렵고 막막한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일은 어떤가? 40대 한 회사원은 부인과 자주 다툰다며 한숨지었다. 다툼의 이유는 한 가지. 남편과 부인이 서로 고민거리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부인은 '이사를 가야 하는데 내놓은 집이 빨리 안 팔려서' '몇 푼 안 되는 돈이지만 주식에 투자한 돈이 자꾸 줄어서' '몸담고 있는 직장 상사의 잔소리가 심해서' 등등 온갖 걱정을 이고 지고 살았다.
남편의 반응은 한가지뿐이었다. "언젠가 되겠지." 천하태평이라고 원망하는 부인에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단다. "부동산이나 주식 경기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직장 상사가 천년만년 거기에 있을 것도 아닌데, 왜 걱정해." 남편은 "그런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하나도 없는데 굳이 머리 아플 필요가 있느냐"며 "걱정도 팔자"라며 핀잔을 주었다.
이쯤 되면 부인은 스트레스투성이고, 남편은 도를 깨친 도인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사실 부부간 다툼의 이유는 고민거리 기준이 아니다. 부인은 걱정을 늘어놓자는 게 아니다. 대화를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 괜스레 주식 투자했다는 원망, 당신 벌이가 시원찮아서 맞벌이를 한다는 불만을 듣기 싫어 그저 회피하는 것이다.
적어도 이들 부부에게 앞서 고민들은 큰일이다. 하지만 정작 두 사람 모두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있는 셈이다. 그게 큰일이건 사소한 것이건 고민 좀 하는데 무슨 '목숨까지 건다'고 표현하느냐고 되물을 수 있다.
하지만 뇌혈관 전문의인 경북대병원 김용선 교수는 "바로 그런 고민 자체가 목숨을 위협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교감신경이 활성화해 혈압이 오르고 혈관이 수축하는 등 몸에 부담을 준다. 화를 내면 이런 현상이 2시간 이상 지속되기도 한다." 김 교수는 "이런 일이 반복되면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 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앞서 술자리의 두 칼잡이는 제대로 알지도 못한 일로 스트레스만 받았고, 불평투성이 부인은 자기도 모르는 새 가장 든든한 후원자를 적으로 돌려 고민에 싸였고, 도인처럼 보이는 남편은 지레 겁을 먹고 혼자서 끙끙 앓았을 터이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마라' 이후 '행복에 목숨 걸지 마라'를 펴낸 리처드 칼슨도 '스트레스는 날마다 일어나는 사소한 소란 중 하나일 뿐이며, 속상한 일로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슬퍼하고, 우울한 기분을 비상사태처럼 여기지 말라'고 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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