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몽튼에도 봄이 찾아왔습니다. 겨우내 쌓였던 눈은 어느새 사라지고 집 앞마당에는 잔디가 돋아날 준비를 합니다. 봄은 길거리의 모습부터 바꿉니다. 지나가는 사람의 옷차림이 가벼워지고 집집마다 대청소를 합니다. 'Garage Sale'(집 앞 공터에서 필요 없는 물건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파는 것) 간판도 눈에 띕니다. 벌써 신문에는 여름철 캠핑을 위한 보트와 캠핑카 판매 광고가 등장합니다.
조금 더 따뜻해지면 오픈카와 모터사이클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모습도 보게 될 것입니다. 작년 봄, 몽튼에서 첫 봄을 보내며 우리 가족 모두가 신기하게 바라본 풍경이 있습니다. '나는 언제 저런 걸 한 번 타보나' 하고 한참 바라본 오픈카에는 젊은이가 아닌 노부부가 타고 있었지요. 선글라스를 끼고 말입니다. 모터사이클과 잘 어울리는 검은 가죽옷을 입은 멋진 남자. 그런데 헬멧을 벗는 순간 '헉'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헬멧에 숨겨진 백발을 감히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한국에서는 볼 수 없지만 몽튼에서는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캐나다의 노년은 이처럼 여유가 있습니다. 집에서 손자, 손녀를 돌보거나 노인정에서 고스톱 또는 장기로 시간을 보내는 한국 노년기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캐나다는 사회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는데다 노인이 최우선인 사회입니다. 흰머리 성성한 노부부가 오픈카와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도 젊은 사람들 어느 누구도 "노망(?) 났네!"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젊을 때 열심히 일해서 급여의 3분의 1 이상을 세금으로 냈고 연금 역시 꾸준히 납부하였다가 퇴직 후 연금으로 생활하는 거니까요.
캐나다에서는 정년을 맞이하면 자식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들만의 노후를 계획합니다. 집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 가서 집 관리 부담을 덜고 편하게 노년을 즐깁니다. 그리고 여름에는 바닷가 근처에 작은집(Cottage)을 구해 놓고 여름내 휴가를 즐기다가 가을이 시작될 무렵 다시 도시로 돌아옵니다.
퇴직 후에는 특별히 돈 들어갈 만한 일은 없어 보입니다. 한국은 자녀가 결혼할 때까지 대학교 등록금이며 생활비, 용돈 그리고 결혼 자금까지. 이처럼 50대 이후에도 여전히 부모가 자식 뒷바라지를 해주어야 하지만 이곳에서는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부모 자식 간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적어집니다.
자녀를 위해 학자금을 보조해 줄 형편이 안 되는 부모들도 많은데다 자신의 노후 생활을 희생하면서까지 자녀의 대학 진학을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학 진학 자체를 생각하지 않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고등학교 졸업 후의 삶에 부모의 스펙을 개입시키는 일이 드물고, '엄친아' '엄친딸'처럼 상대적인 빈곤감과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자극적인 용어들도 들리지 않습니다.
제 딸도 나중에 대학 진학을 하지 않는다고 할까봐 한편으론 걱정됩니다. 비록 한국을 떠나 있지만 여느 부모들처럼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키워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론 노년을 자식에게 얽매이지 않고 아내와 여유롭게 보내고 싶은 바람으로 캐나다로 왔으니 두 가지 마음을 가진 셈이지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안락한 노후 생활은 스스로 준비해야겠지요. 캐나다와 한국 간에는 사회보장협정이 체결되어 있어 한국에서의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즉, 한국에서의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캐나다 거주 기간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요즘은 한국 사람들의 다수가 국민연금을 해약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한 채 이민을 옵니다.
캐나다 사람들은 노후를 위해 한국처럼 연금저축에 많이 가입합니다. 그리고 직접세든, 간접세든 여러 항목으로 각종 세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소득의 3분의 1이 세금으로 나간다 해도 '무슨 세금을 이렇게 많이 거둬 가냐'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결국 자신이 낸 세금을 노후에 돌려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사회복지제도가 있으니까요. 의무를 다하고 나면 권리를 확실하게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사회복지제도와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믿음이 캐나다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khj09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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