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불확실성 시대의 조직화 원리

정부의 국방개혁안('국방개혁 307 계획')을 놓고 찬반 논쟁이 한창이다. 그 동안 국방개혁은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심지어 행정전문가들에게도 여간해서는 공개되지 않던 주제였다. 이번 경우는 국방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 불거진 심각한 의견 대립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비로소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천안함과 연평도 피폭을 계기로 합참 의장의 권한 및 책임 배분을 비롯하여 군 최고 지휘구조의 조직화 문제가 핵심 쟁점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원리는 '계서제'와 '연결망'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단순화하여 접근해 볼 수 있다. 계서제(hierarchy)가 조직 간에 혹은 각 조직 내에서 종적인 지휘 체계와 분업 관계를 강조하는 조직화 원리라면, 연결망(network)은 횡적인 연대와 협력 관계를 강조하는 조직화 원리다. 계서제가 업무 분담의 권한과 책임에 대해 사전에 설정된 명확하고도 공식적인 법규에 근거하여 작동된다면, 연결망은 비공식적이고 자발적인 업무 배분과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려는 협력 의지에 의해 작동된다. 계서제를 강조하는 경우는 수직적이고 지속적이며 제도적 경계가 분명한 피라미드 조직이 선호되는 반면에, 연결망을 강조하는 경우는 수평적이고 임시적이며 제도적 경계가 불분명한 평면 조직이 선호된다.

이 두 가지 개념은 공사(公私) 영역을 막론하고 모든 조직에 공히 혼합적으로 적용되는 원리다. 다만 조직이 추구하는 본연의 목적에 따라 그 비중에 있어서 차이가 나타난다. 조직의 목적이 뚜렷하고 업무가 일관성을 필요로 하는 경우는 계서제 원리가 더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조직의 목적이나 업무 내용이 가변적이고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경우는 연결망의 조직 원리가 더 강조된다. 전자의 예로써 군대나 경찰 조직을, 후자의 예로써 연구소나 벤처 기업의 조직을 각각 들 수 있다.

조직화에 있어서 계서제와 연결망의 상대적 비중은 각 나라별로도 의미 있는 차이가 있다. 유럽 대륙계 국가들의 경우는 계서제 원리가, 북미 대륙의 경우는 연결망의 원리가 상대적으로 더 강조되는 행정문화가 배태되어 있다. 흥미롭게도 이처럼 특징적인 두 가지 행정문화와 조직화의 전통을 각각 대표하는 미국과 일본이 최근에 엄청난 정책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연결망 조직의 전통이 강한 나라인 미국이 2001년에 뉴욕 소재 무역센터 빌딩의 붕괴와 3천 명이상의 인명 피해를 가져온 '9'11 테러 사건'을 당했다. 이 사건 직후 여러 전문가들의 정밀 분석 끝에 나온 결론은 '조정 능력의 결여'였다. 이러한 진단에 따라 미국 정부가 급기야 이듬해에 '국토방위부(DHS)'를 신설했다. 그리고 그 때까지 각각 별개 조직으로 운영되던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연방재난관리청(FEMA)을 비롯하여 22개 연방기구와 18만 명의 소속 인력을 이 기구에 귀속시켰다. 보다 일사 분란한 지휘 체계 하에 이들을 귀속시킴으로써 국내외적 위협에 '통합적이고 조화로운 국가적 대응'이 가능하도록 하려는 조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년에 발생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1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뉴올리언스 사태도 역시 조정 능력의 결핍에서 비롯되었다는 진단이 나왔다.

미국과는 반대로 계서제 전통이 강한 대표적인 국가인 일본이 '3'11 동북부 지진'으로 인해 해일과 원전 사고라는 엄청난 재앙을 겪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하겠거니와, 일단은 계서제 행정의 한계점이 불거지고 있는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사전에 준비된 '매뉴얼' 수준을 넘어서는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경우에 계서제 만으로는 부족하고, 다양한 조직 및 영역 간의 연결망적 협력을 이끌어내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함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본래 세계에서 행정 선진국으로 알려진 이 두 나라의 위기관리 실패 사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 계서제와 연결망이라는 이분법적 조직화 원리 가운데 어느 한 가지를 더 강조하는 식의 접근법에 의해서는 21세기 불확실성의 시대를 관리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국방 개혁의 범위를 넘어, 앞으로 언젠가는 '통일'이라는 보다 광범위하고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 분명한 한국에서 특히 염두에 두어야 할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정용덕(서울대 교수'행정학)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