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한국시리즈에서의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은 선수들조차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롯데 선수들은 삼성 라이온즈가 당연히 우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당시 삼성의 김근석은 "6차전(3승2패로 삼성이 앞선 상황) 때 롯데의 한 선수가 '여기서 그만 끝내자'며 승부의 종지부를 찍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최종전의 엇갈린 명암은 뒤풀이의 분위기를 180도 바꿔 놨다. 예상치 못한 우승에 롯데는 '승리의 찬가'를 부를 장소를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 진다고 생각했기에 '축하연'을 열 장소를 물색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 구한 롯데의 축하연 장소는 서울의 호텔 나이트클럽이 됐다. 롯데 선수단은 먹고 마시며 잊지 못할 '대역전' 드라마의 감흥을 만끽했다. 그날 축하연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가지고 있던 현금이 모자라 300여만원의 외상까지 달아야 했다.
술을 마신 건 삼성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잔을 부딪치는 일은 없었다. 창단 때부터 스타군단으로 불리며 최고의 팀으로 꼽혔던 삼성은 결정적 순간, 가슴을 찌르는 쓴잔을 들어야 했다.
그날의 충격은 컸다. 이건희 구단주(당시 삼성그룹 부회장)는 "전력상 우세라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화근이 됐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이는 월등한 전력 때문에 나머지 5개 구단의 '공동의 적'이 됐다는 말로 해석됐지만, 내면엔 삼성 선수들의 정신무장에 일침을 놓는 따끔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삼성은 곧바로 대구로 올 수조차 없었다. 선수를 실은 버스는 대구가 아닌 칠곡에 멈췄고, 그곳에서 해단식을 했다. 화난 시민들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선수들은 일주일 동안 외출을 삼갔다.
삼성은 곧바로 패인 분석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5년 2월, 삼성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남긴다. 국내 구단 최초의 미국 전지훈련이었다. 프로야구가 출범할 당시만 해도 해외 전지훈련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필요성은 제기됐지만 "뭐 하러 외국에 나가 돈을 쓰느냐"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프로가 출범했지만 구단과 선수들은 프로가 뭔지를 몰랐다.
한국시리즈 패배 이후 김시진, 장효조 등을 일본 긴데스의 마무리 훈련에 합류시켜 결점 보완을 꾀한 삼성은 해가 바뀐 2월 김영덕 감독, 정동진'박영길'유백만'우용득 코치, 선수, 프런트 등 38명의 선수단을 구성, 미국 플로리다 주 베로비치의 다저스타운으로 떠났다. 2월 27일부터 3월 16일까지 18일간 진행된 미국 전훈은 삼성 선수들에게 새로운 야구의 눈을 뜨게 했다. 그 효과는 삼성에 국한되지 않고 국내 프로야구의 틀을 갖추는 계기로 작용한다.
LA다저스 알 캄파니스(타격), 모리 윌스(주루), 레드 애덤즈(투수), 치코 페르난데스(수비), 레오 포사다(타격) 코치를 인스트럭터로 채용한 삼성은 그곳에서 새로운 선진 야구를 익힌다. 미국식 훈련은 달랐다. 훈련만 반복하는 일본식 야구가 절대 기류였던 당시 미국에서는 땀에 유니폼이 흠뻑 젖을 때까지, 더 이상은 숨을 쉴 수 없을 때까지 계속되던 훈련은 없었다. 김근석은 "훈련은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2, 3시면 끝났다. 연습경기가 대부분이었다. 하루 소비하는 공도 10개가 넘지 않았다. 한국에서 미리 준비한 수많은 야구공은 그대로 다시 싣고 와야 했다"고 말했다. 짧은 훈련시간은 선수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마침내 김영덕 감독은 다저스 코치진과 언성을 높이고야 말았다. 선수들도 모자란 훈련량을 채우려 자발적으로 개인훈련을 자청했다. 미국 전훈의 소득은 예상외로 컸다.
이 전지훈련을 통해 김일융은 페르난도 발렌수엘라의 주무기였던 포크볼을 익혔고, 김시진은 제구력을 다듬어 그해 각각 25승을 올렸다. 이해창은 메이저리그 도루왕 모리윌즈의 개인지도를 십분 활용해 리드폭을 과거보다 두 걸음가량 늘리고 투수 모션을 빼앗아 빠른 스타트를 하는 등 진일보한 주루기술을 선보인다. 1985년 삼성이 '전문 마무리'를 도입, 투수 분업을 꾀한 것도 미국 전지훈련의 영향이 컸다.
미국 전지훈련에 참가한 오대석 포철공고 감독은 "1주 정도 지나 김영덕 감독이 쉬는 날 선수들을 저녁에 불렀다. 그러나 야간연습은 30분 만에 끝이 났다. 라이트를 밝히자 모기떼가 달려들어 도저히 연습을 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곳에서의 가장 큰 성과를 팀워크로 꼽았다. 오 감독은 "이기는 야구가 아닌 기본기에 충실한 미국 선수들을 보면서 팀 배팅의 중요성을 알게 됐고 투수와 야수가 서로를 이해했다. 야수가 실수하면 투수는 오히려 격려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진짜 야구를 배우고 즐겼다"고 했다.
삼성 선수들은 개인 성적만으로 결코 우승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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