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의 복지부동 행태가 문제가 됐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옛말이라고 믿고 싶던 그 말은 아직도 유효한 것 같다. 시민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도서관 직원과 제도가 시민보다는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직접 가지 않고도 책을 빌릴 수 있게 한 제도인 이동문고를 운영하는 대구의 한 시립도서관 이야기다. 아파트 단지 등을 돌며 많은 시민에게 책을 빌려주는 이동문고는 '차량도서관'이라는 특성상 도서의 종류가 적고 배차 간격 때문에 한곳에 오래 머물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시민들의 편의를 극대화한 제도로 분명히 잘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동문고에서 빌린 책은 반드시 이동문고에 반납해야 한다는 코미디에 가까운 도서 반납 규정은 분명 문제가 있다.
이동문고의 책도 해당 도서관의 책이다. 이동문고가 집 근처로 찾아오는 정해진 요일, 정해진 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 직접 도서관을 찾아가 책을 반납하려는 시민에게 돌아온다는 말이 이동문고에서 대여한 책은 도서관에서 받지 않으니 이동문고에 직접 반납하라는 것이다. 해당 도서관 직원들이 자신들의 업무를 철저히 나눠 잘 지키는 모양이다. 그렇게 직원의 편의를 위한 잘못된 규정 때문에 시민은 도서관에 갔다 헛걸음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보존서고에 있는 도서의 대출 문제도 있다. 도서관의 공간이 부족해 발행연도가 오래된 책들은 지하 보존서고에 따로 보관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 그 책들은 시민이 직접 보지 못한 상태에서 대출신청을 통해 받아볼 수 있다는 점도 이해한다. 그러나 대출신청을 하고 3일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는 대출신청 건들을 모아서 한 번에 처리하려는 것으로 어디까지나 직원의 편의를 위한 제도다.
귀한 시간을 내서 도서관을 찾은 시민에게 3일 후에 다시 도서관을 찾아오라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과연 다시 도서관을 찾고 싶을까.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주문해도 그보다는 빠를 것이다. 물론 대출신청이 있을 때마다 매번 보존서고에 내려간다는 것은 직원으로서는 번거로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공무원이라면 시민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시민의 편의를 조금이라도 신경 쓴다면 대출신청 즉시는 아니더라도 3일 후 대출에서 당일 대출 정도로는 충분히 앞당길 수 있다.
자신이 도서관의 직원이 아니라 도서관을 찾는 시민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숱한 문제들을 왜 모른 척하는 걸까. 이는 도서관은 직원이 아니라 시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애써 모른 체하는 공무원의 전형적인 복지부동 행태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모든 관공서가 그래야겠지만 특히 도서관 가는 길은 편하고 즐거워야 한다. 그 길이 바로 우리의 미래가 될 테니까.
안희철<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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