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자유평등을 지지하고, 민주주의를 옹호한다고 말한다. 한나라당에서 진보정당에 이르기까지 모두 '복지'를 이야기하고 '서민을 위한 정치'를 주장한다. 그럼에도 이들 정당 간에 첨예한 대립은 그칠 줄 모른다. 일반인인 우리 역시 평화롭고 공정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염원하는데, 어째서 이견이 발생하는 것일까.
영국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수많은 교통신호등이 사람들의 보행 자유를 제한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교통신호등이 거의 없지만 종교의 자유가 없다. 어느 사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최대한 자유를 주는 것일까? 평범한 영국인은 하루에도 몇 번씩 교통신호에 막혀 귀한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자유를 제약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종교를 믿을 수 없다는 금지 외에 보행의 자유를 제약당하지 않는다. 순전히 양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영국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 사람들보다 자유를 더 많이 제약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런가?
한국은 어떤가? 경찰서에서 술 취한 취객이 경찰을 폭행한다. 현행범을 잡기 위한 경찰의 조치는 때때로 '과잉 혹은 폭력'이라는 비판에 직면한다. 학생이 수업 중에 다른 학생에 방해가 되는 어떤 짓을 해도 선생님은 뾰족한 대책이 없다. 체벌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현행범 체포 때 미국 경찰은 한국 경찰보다 폭력적인 방법을 서슴지 않는다. 한국은 과연 '자유'가 넘치는 국가인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오늘날은 직접 민주주의가 완벽하게 가능하다. 모든 가정에 컴퓨터 단말기를 제공하고, 유권자는 단말기를 통해 모든 정책에 대해 직접 투표할 수 있다. 이것을 '전자민주주의'라고 불러보자. 이 제도는 지금의 '대의민주주의' 체제보다 훨씬 직접적인 민주주의 형태다. 마우스만 클릭하면 법을 직접 결정할 수 있다. 그들은 관련 이슈를 잘 알 필요도 없고, 토론을 듣거나 참여할 필요도 없다. 마우스만 클릭하면 된다. 이 제도의 특징은 국민의 생각이 날것 그대로 정치에 반영된다는 점이다. 참여하는 인구로 본다면 이보다 더 나은 민주주의가 있겠는가? 그런데 과연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가?
지은이 애덤 스위프트는 저명한 정치 철학자다. 그럼에도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주장을 개진하기보다 이제까지 정치철학이 일구어온 성과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전달하는데 치중한다. 이는 지은이가 자기주장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혹은 시사평론가라는 전문가들조차 격하게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가지 개념들을 편한 대로 뒤섞어서 대충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비판에 해당한다.
민주정치는 언제나 그 이상에 미치지 못한다. 이 제도는 굉장히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교묘하게 자기주장을 옹호하는 폭력일 수도 있다. 제멋대로 굴며, 무지하고, 자기이익만 추구하는 집단의 생각을 표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이 다음 끼니를 마련하느라 모든 시간을 보낼 때, 일부 계층이 유복한 환경 덕분에 교육을 잘 받았고, 그래서 정치이슈들에 대해 생각하고, 조리있고 설득력 있게 자기주장을 펼친다고 하자. 이들 소수의 주장이 관철된다면 민주적인가? 반대로 무지하고 무관심한 대중이 별생각 없이 투표행위를 해서 법률이 결정된다고 하자. 이때는 민주적인가? 아니라면? 다수의 동의를 얻어 탄생한 법률이 비민주적이라는 말인가? 민주주의는 이처럼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강제결정이 정당성을 획득하는 방법이다. 배심원의 판단, 심판의 판정이 설령 잘못됐더라도 옳은 것으로 인정하기로 약속하고, 강제당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것을 부정하면 게임은 성사되지 않고, 민주국가는 존립할 수 없다. 그러니 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민주주의 국가의 구성원들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민주국가의 수준은 그 국민의 수준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이 책은 ▷정의에 대해 ▷자유에 대해 ▷평등에 대해 ▷평등주의적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 ▷공동체주의의 오해에 대해 ▷민주주의의 개념과 불일치에 대해 광범위하게 이야기한다. 민주주의에 대해 핏대를 올리며 논쟁하고 있거나 논쟁할 의사가 있다면 한번은 꼭 음미해야 할 책이다. 지은이 애덤 스위프트는 영국 태생의 정치철학자 겸 사회학자로 현재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340쪽, 1만7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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