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벚꽃 斷想

모모세 다다시(百瀨格)란 일본인이 있다. 일본 기업의 주재원으로 우리나라에 살면서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못 따라잡는 18가지 이유'라는 책을 출간해 화제를 모았던 사람이다. 유쾌하지 않은 책 이름과는 달리 그는 '한국 사람이 되고 싶은 일본인'이라는 고백과 함께 잘못된 한국 문화를 진솔하게 꼬집었는데, 책머리에 이런 일화를 담았다.

언젠가 한국 친구들과 어울린 술자리에서 "당신은 틀림없이 백제(百濟)가 멸망하면서 일본으로 도망간 사람의 후예일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솔직히 기분이 나빴다고 한다. 한데 百자가 들어 있는 자신의 성(姓) 모모세(百瀨)가 일본에서도 흔한 성씨가 아닌데다, 고향인 군마(群馬)현 다카사키(高崎) 부근의 지형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고 보니,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어느 날 그는 마음먹고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로 내려갔다. 그리고 '계백 장군'의 동상을 발견했고, 거기에 새겨진 설명문을 읽고 깜짝 놀랐다. '황산벌 싸움에 출전하기에 앞서 사랑하는 가족을 자기 손으로 베어 죽이고 결사대로 뽑은 5천 명의 부하와 함께 5만의 적진에 뛰어들어 용감하게 싸우다 최후를 맞은 맹장(猛將)….' 그는 '계백 장군과 5천 결사대'에 첫눈에 매료되고 말았다.

여기서 일본 사무라이의 '원조'를 떠올렸다고 한다. 결사대의 마지막 항쟁에서 '확 피었다가 확 지고 마는 벚꽃'으로 상징되는 일본 사무라이 정신의 원류를 발견한 것이다. 그때부터 자신의 선조가 백제의 유민이고 또 계백 장군의 후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도 황송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산기슭이며 도로변마다 벚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벚꽃은 어우러져 피었을 때 멋진 조화를 이룬다. 벚꽃은 바람결에 눈 내리듯 한꺼번에 질 때도 아름답다. 일본 사무라이 정신 역시 벚꽃으로 비유한다.

봄날 벚꽃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켕기는 것은 벚꽃에 내재된 왜색(倭色) 정서 때문일까. 요즘 고통을 겪고 있는 일본인을 도와주면서도 왠지 맞갖잖은 뒷맛이 남듯이. 하지만 벚나무는 원래 한반도에서도 자생을 했으니 애써 거부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모모세 씨의 말마따나 일본 정신의 자랑인 사무라이의 원조국 또한 한국이 아닌가.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