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대구시 남구 대명동의 반지하 한 주택에서 백골 시신으로 발견된 정모(50) 씨는 가족도, 친척도 없는 '천애 고아'였다. 평생 내세울 만한 직업을 가져본 적도, 결혼을 한 적도 없었다. 1961년 태어난 그는 고아로 떠돌았고 1968년 대구지방법원 관계자가 성을 정 씨로, 본은 포항 오천으로 잡아 호적을 만들어주었다. 정 씨는 고아가 된 연유도 몰랐고, 원래 성이 뭔지도 알지 못했다고 법원 관계자는 설명했다.
정 씨는 이후 전국을 떠돌다 2004년 7월 대구 남구 대명동의 한 주택 반지하에 전세 600만원을 주고 둥지를 틀었다. 일용노동자였던 그는 새벽에 일을 나가 저녁에 귀가했고, 수시로 집을 비웠다.
집주인 K(59) 씨는 아내와 노점상을 하며 밤늦게 집에 들어왔기 때문에 정 씨와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K씨는 "정 씨가 집을 자주 비웠고, 전기료 등 각종 세금을 받아야 할 때는 만났지만 그 외엔 볼 일이 없었다"고 했다. 정씨는 2008년까지는 전기료를 꼬박꼬박 냈다. 그러다가 그해 10월부터 전기료가 밀렸고, K씨가 그해 12월 "전기료를 내라"고 독촉하자, "돈이 없다. 빌려달라"는 대답만 들었다고 했다. 이때가 K씨가 마지막으로 정 씨를 본 때였다.
먹고살기 바빴던 K씨는 1년 후인 2009년 초가을 정씨가 전화도 받지 않고, 전기료가 계속 밀리자 잠겨 있던 정 씨 방의 열쇠를 따고 들어갔다. "방에는 옷가지만 널려 있었어요. 지난해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지요."
K씨는 "지난해 여름 이상한 냄새가 났지만 음식물 쓰레기가 섞는 냄새로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다시 1년 가까이 흐른 이달 13일 오전 K씨는 한동안 정 씨가 보이지 않아 그의 방을 다시 찾았다. 연락도 되지 않는데다 세금까지 밀려 있던 터라 정 씨를 내보내고 새로운 세입자를 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주인을 맞이한 것은 정 씨가 아닌 이불 속에 누운 정 씨의 백골 시신이었다.
14일 K씨는 "너무 놀라 어젯밤에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결과, 시신 옆에 "전세금은 소년소녀 가장을 위해 사용해 달라"는 유서와 전세계약서가 있었다. 경찰은 정 씨가 2008년 12월 이후 전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등산복 차림의 겨울옷을 입은 채 사망한 것으로 미뤄 2009년 또는 지난해 겨울 숨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대구 남부경찰서 관계자는 "유서는 오래전에 써 놓은 것으로 보이고, 외부 침입 흔적은 없다. 자세한 사망 원인은 부검해 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고인의 유언에 따라 대구시와 협의해 전세금 600만원 중 밀린 전기'수도료 20여만원을 제외한 금액을 사회복지법인에 기탁할 계획이다.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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